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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Sep 02. 2020

감정의 디저트

'그릭 모모'라는 이름의 디저트가 있다. '그리스인'의 Greek에 복숭아의 일본말인 모모(もも)를 더했다. 어느 나라 디저트인지 모르지만,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모양이 그럴싸하여 한번 만들어보았다.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 복숭아 꼭지 부분을 잘라낸 후, 씨 있는 주위에 칼집을 내고 작은 숟가락으로 씨를 파낸다. 그 안 그릭 요거트와  섞어 넣고, 그래놀라나 시리얼을 깐 접시 위에 껍질 벗겨 올리면 끝이다. 잠시 냉장고에 얼려 차갑게 잘라먹으면 좋다.  


간단하다 해서 쉬운 것은 아니듯, 복숭아씨를 파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복숭아를 잡숟가락찔러 넣어 씨를 파내야 하는데, 섣불리 찌르 과육이 갈라지거나 구멍이 난다. 그렇다고 너무 조심스러우면 씨가 좀처럼 분리되 않으니, 씨 모양 따라 숟가락을 가며 적절한 힘으로 밀당을 해야 무사히 씨를 파낼 수 있다.

살면서 간단하다고 섣불리 대했다가 생각지도 않게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 옷에 삐죽 실오라기 튀어나와 있을 때, 보기 싫다고 무심코 당겼다간  투둑 풀어 옷이 망가진다. 가위로 실만  잘랐어야 하는 하고 후회해야 소용없다.


만약 옷에 무엇인가 묻은 것을 발견했다면, 그걸 털어낼지 아니면 닦아낼지도 생각해야 한다. 털어내면 간단한 것에 물을 묻혔다가 그대로 얼룩이 되고, 물로 닦아야 할 것을 털어내려 다가 옷에 보풀을 남긴다. 침착하게 살펴서 털어낼 것은 툭툭 털고, 닦아야 할 것은 빨리 닦아 놓아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 일상의 얼룩은 그때그때 잘 관리하는 편이 좋다.

일상의 감정도 그렇다. 어떤 감정마음속에 복숭아씨처럼 묻혀있거나, 실오라기처럼 슬며시 삐져나오기도 하고, 얼룩처럼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에 불필요한 감정이란 없어, 모든 감정은 저마다 이유를 가지고 표출된다. 나누고 더해지며 증발하거나 증폭되는 게 자연스럽. 다만 오랫동안 하나의 감정에 홀로 머물러 있으면 그에 물들어 얼룩이 짙어질 수 있. 특히 슬픔, 후회, 우울함이나 미련 같은 감정들. 그때그때 감정을 잘 손질해서 보내주어야 한다.

복숭아씨처럼 묻혀있는 슬픔은 무른 마음이 다치지 않게 조심히 파내고, 실오라기 같은 후회는 이미 지난  더 당기지 말고 그냥  잘라낸다. 우울함이 흙먼지처럼 달라붙어 쌓인다면 툭툭 움직이면서 털어내고, 미련이 눅눅하게 얼룩졌다면 깨끗하게 빨아 말려 마음이 제 색을 찾도록 한다. 누구매일 똑같이 한 장씩 넘기는 삶의 책갈피를, 좋은 색으로 물들여 읽고 쓰고 싶다면 마음속 감정의 얼룩을 잘 살펴 손질하여야 한다.


완성된 그릭 모모를 먹어보았다. 음. 그냥 딱 복숭아에 요거트 넣은 맛이다. 꿀을 넣었더니 조금 달고, 요거트라서 새콤한 맛이 났다.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재료 그대로의 맛이지만 나름 괜찮았다.

삶도 그렇겠다. 어떻게 하건, 챙겨 넣은 재료에서 맛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씨를 덜어내고 요거트를 담아 맛을 풍부하게 하듯, 조금 더 감정을 살피고 손질하여 만들어가면 사는  그만큼 괜찮아진다. 가끔은 달달하게 꿀도 섞어 넣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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