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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Oct 08. 2020

먹을 수 있으니 좋구나

1년에 한 번씩 받는 건강 검진. 점심 무렵 검진을 마치고 검진센터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가면 작은 그릇에 죽을 담아 준다.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견딘 에 따뜻한 곡기가 들어가니 좋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투 후에 소년병이 건넨 토란을 먹으며 "먹을 수 있으니 좋구나." 했던 것처럼, 비록 목숨을 걸진 않았지만 아무튼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느낌으로 죽을 떠먹는다.  


매년 검진 때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마다 죽음을 생각한다. 약을 먹고 팔에 바늘을 꽂은 후 생년월일과 이름을 확인하고 침대에 모로 누웠던 기억은 나는데, 주사약이 들어가자마자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시간이 꽤 지나 다른 에 누워있다. 사람은 소량의 약으로도 바로 저세상으보낼 수 있는 약한 존재라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지 못하면 그게 죽음이겠다. 혹시 다시 눈을 뜨는 곳이 이 세상이 아닐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 문득 묘한 기분이다.  

헐렁한 검진복 차림으로 의사 누우면 나이, 성별, 외모, 직업, 지위상관없는 평등한 존재들이다. 오직 순환기, 호흡기, 소화기 등 몸의 필수 기관들이 제구실을 하고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측정되고, 적절 생명체로 기능하고 있는지만 평가된다. 정기 검사를 받는 자동차와 같은 입장이지만 낡은 부속품을 고칠 수는 있으나, 새 것으로 갈아 끼울 수는 없다. 그저 미우나 고우나 마지막까지 관리하며 끌고 다녀야 하는 몸이다.  


만약 무슨 시험 같은 것이라면 그 시간 동안 잘 보려 온갖 정성을 다 하겠지만 검진은 그와 다르다. 그냥  시간 동안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선생님 말에 복종하면 된다. 커닝도 찍기도 통하지 않는다. 숨 참으라면 참고, 배를 불룩 내밀라면 내밀고, 돌아 누우라면 눕는다. 눈 크게 뜨라면 뜨고, 입을 벌리라면 벌린다. 몸 안을 비추고 찍는 온갖 도구는 곳곳에서 게으른 습관의 흔적들을 드러내는데,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 이라서 평소에 꾸준히 노력을 해야 괜찮은 결과가 나온다.

나무야나무야('20.10.3), KBS

몸속 모든 기관은 그동안 아랑곳없이 제 할 일을 해왔다. 코가 쉬는 숨에 따라 폐는 꾸준히 공기 중의 산소를 모아 혈액에 싣고, 심장이 제 박자에 따라 몸 전체로 밀어 보내면, 혈액은 몸을 돌며 산소나 영양분주고 이산화탄소나 노폐물을 받아온다. 아랑곳하지 않것들로 세상은 유지된다. 시간은 변함없이 제 속도로 흐르며, 달은 한결 같이 태양을 도는 지구를 따른다.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팽이는 젖은 나무를 오르고, 나무는 천천히 잎에 빗물을 머금고 남은 빗물을 흘려보낸다. 약 지구가 도와 궤도를 고민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심장이 몸 컨디션에 따라 뛰다 말다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테이블에 놓인 죽에서 서서히 올라오는 김은 차가운 공기에 자신의 따뜻함을 내어준다. 돌아보면 눈을 몇 번 감았다가 뜨는 동안 세월이 금방 흘러갔다. 그 시간을 지내며 조금씩 약해진 몸은 그동안 세상에 무엇을 내어주었을까?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지만 비록 몸은 약해지더라도 마음의 기능은 약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마음에도 가끔 내시경을 넣어보고, 불룩 숨을 넣고 MRI 같이 촘촘하게 들여다보고도 싶다. 


건강함은 힘보다는 유연함에 가까운 것 같다. 몸과 음의 유연함은 부지런한 움직임에서 나온다. 검진 결과는 뭐 그리 좋지는 않겠지만 아직은 낙제점은 아니라 다행이다. 언젠가 한 번은 낙제의 시기가 오겠지만 그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며 뭔가 좋은 것을 내어주며 살아야지 싶다.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그래도 아직은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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