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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5. 2020

띄어쓰기 맞춤법

우리말의 어떤 단어는 띄어 쓰고, 어떤 단어는 붙여 쓴다. 글을 배우면서부터 띄어쓰기를 익혔다. 어떻게 붙여야 글자와 글자가 서로 도움을 주고, 어떻게 띄어야 글자들이 그 사이에서 숨을 쉬는지 알아야 했다. 외국어 중에서 띄어쓰기를 신경 써야 하는 말은 없었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모든 단어를 붙여 쓰고, 영어를 쓸 때는 모든 단어를 띄어 쓰면 되었다.


언어의 띄어쓰기는 거리두기와 통했다. 바이러스 대유행 시기에 한국이 돋보인 이유는 서로 적절히 띄우면서도 필요하면 곁에서 정성껏 도왔기 때문이다. 영어권 나라들처럼 봉쇄한다며 무조건 띄우지 않았고, 어느 이웃 나라처럼 괜찮다며 붙어 지내지도 않았다. 조사와 접미사, 자립명사와 의존명사처럼 서로 붙고 떨어지며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단어 간 만남이 어색할 때면 그 사이로 사이시옷이 슬며시 들어오는 게 우리말이다.


적절하게 띄어 쓰는 것은 가족 간에도 필요하다. 주말에 모처럼 동해안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해변 한쪽에 바다가 넓게 바라보이는 바위가 있었다. 오를 때는 잘 몰랐는데 내려올 때 보니 바위에 물기가 있어 미끄러웠다. 넘어지지 않도록 서로 손을 꼭 잡고 내려오다가 오히려 그게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손을 잡으면 서로 의지는 되지만 그 손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손을 놓고 각자 적당한 바위를 잡고, 발 디딜 곳을 스스로 선택하여 내려오는 게 훨씬 안전했다. 우리말 맞춤법에서도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 가족 같이 서로 의존하는 사이일수록 적절한 띄어쓰기를 생각해야 한다.

가족이란 별자리 같은 존재다. 멀리서 보면 옹기종기 모여 곰이니 천칭이니 사자니 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지만, 서로 수백 광년 아뜩한 거리만큼 띄어쓰기를 하고 있는 게 별자리다.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운 것은 적절히 띄어쓰기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 띄어 쓴다는 것은 서로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사이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는 별은 멀리 떨어져 있어 그렇다. 별자리는 한참 들여다봐야 비로소 내 눈에 들어온다. 오래 바라보며 별 주위를 둘러싼 어둠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별은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은 스스로 적절한 거리로 띄어쓰기를 하고 있다. 별 사이 공간도 우주 전체로 보면 충분히 가까운 관계이며, 꽃의 암술과 수술의 거리는 충분히 멀어서 그 사이를 극복하려 예쁜 꽃이 피어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분자와 분자도 그 사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물질을 이룬다.

띄어쓰기를 잘하는 것은 어렵다. 띄어 써도 될 것 같고, 붙이는 게 맞는 것 같고 도무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글에는 맞춤법이 있어서 모르면 고쳐가며 써야 된다. 그게 뭐 중요하냐 내용이 중요하지 하다 보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시는 경우가 생긴다. 삶의 맞춤법에도 띄어쓰기 법이 있다. 삶은 계속 고쳐가는 퇴고의 과정이라서 잘못 붙은 것은 띄우고, 너무 띄웠다 싶으면 붙이며 맞춰가며 사는 게 맞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많이 배웠다. 다만 배운 대로 잘 안 지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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