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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Nov 21. 2020

점프샷을 찍다

한껏 뛰어올라 공중에 정지한 듯 멈춰있는 사진. 점프샷. 디지털카메라 초기 시절에는 이거 한번 찍어보겠다고 "자~하나 둘 셋~. 아~ 다시 뛰어. 다시 다시"를 연속하다가 지쳐 쓰러졌다. 여간해서 뇌와 손, 셔터 사이 시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요즘 스마트폰 연속 촬영 모드를 이용하면 점프샷을 쉽게 찍는다. 짧은 시간을 촘촘히 쪼개어 절정의 순간을 건질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활짝 웃으며 손을 올린 빛나는 모습을 남길 수 있다.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는 삶의 장면 장면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담겨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하루의 시간, 살아온 삶의 시간에는 높고 낮은 점프의 시간들이 있다. 그냥 허우적대며 지낸 하루의 시간에도 바닥을 차고 위로 힘껏 뛰어올랐던 장면이 있었다. 삶에 힘을 주는, 그 기쁨으로 살아가는 점프의 간. 점프샷의 순간은 시간을 촘촘히 쪼개어 보아야 비로소 나타난다.

촘촘히 쪼갠다는 것. 요리할 때 무나 양파를 촘촘히 썰어보면 안다. 덩어리로 있을 에 비해 한결 풍성해진다. 얼마 안 되어 보였던 것이 수북하게 쌓인다. 시간도 그렇다. 촘촘히 쪼개어 쓰면 시간 사이 공간이 더해지며 의외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촘촘히 잘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인다. CT로 찍은 검진 사진은 감춰진 기관의 내부를 초음파로 촘촘히 잘라 단층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촘촘함은 삶을 좀 더 풍성하고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다.   


반면 게으름은 많은 것을 뭉뚱그린다. 그냥 그런 거지 뭐 하며 슬그머니 눙치고 지나간다. 게으름의 반대말은 바쁨이 아니다. 게으른 이들도 마음은 바쁘다. 게으름의 반대는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한 마음은 촘촘하게 주위를 살핀다. 찬찬하며 바쁘지 않다. 상대가 땅을 박차고 점프하여 높이 떠오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응원하며 같이 즐거워한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점프의 순간을 건져올려 기억한다. 그리하여 그 순간을 하나의 빛으로 반짝이도록 한다.

혹시 가족이나 친구나 그 누군가 옆에서 계속 깡총대며 뛰고 있는데, 나름 힘을 내서 땅을 박차 뛰어 오르고 있는데 그냥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가 옆에서 뛰다 힘겨워해도 뭐 그냥 그런 거지 하며 게으름 피는 마음이지는 않은지. 카메라를 들고 앞에 서면 그가 활짝 웃으며 힘껏 폴짝 뛰어오를 텐데, 그 점프의 순간을 응원하며 함께 즐거워할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채소를 촘촘하게 썬다고 할 때 우리는 다른 말로 '다진다'라고도 한다. 촘촘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의 마음을 다진다. 그렇게 단단히 다져진 서로의 마음에서 우리는 힘껏 박차고 올라 웃으며 뛰어오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밝게 웃으며 손을 번쩍들고 뛰어오른, 마음에 오래오래 남을 멋진 점프샷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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