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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Dec 14. 2020

깎는다는 것

손톱을 깎으며 생각했다. 손톱깎이는 가만히 보면 참 훌륭한 발명품이다. 길쭉한 손잡이를 뒤집어 잡고 살짝만 눌러도 넓은 손톱 면을 톡 끊어낸다. 작은 기구인데도 날의 힘은 강해서, 가위로는 둥글게 지나가야 자를 수 있는 것을 그냥 단번에 깎아낸다. 손톱이 깎이는 토각 토각 하는 경쾌한 소리도 듣기 좋다.


손톱에는 '자른다'는 말보다 '깎는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자른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단절의 느낌에 비해, '깎는다'는 말에는 정리의 의미가 담긴다. 손톱이나 머리카락, 잔디처럼 계속 자라는 대상을 다듬어 정리할 때 '깎는다'고 한다. 본질을 살리면서 다만 너무 자란 것만 쳐내어 가지런히 한다. 그래서 머리 깎는다는 말을 그냥 머리를 자른다고 하면 좀 무섭기도 하다.


우리 몸에는 나이에 상관 없이 계속 자라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손톱, 발톱, 그리고 털. 매번 적절히 깎아줘야 하는 그들이라, 가끔 시간의 무심한 흐름을 한 번씩 돌아보게 만든다. 거울을 보거나 키보드를 누르다가, 양말을 신다가 문득 벌써 깎아야 할 시간이 되어버렸구나 깨닫는다. 듀오 '어떤 날'은 그들의 노래 '출발'에서, 하루하루 엇비슷한 생활 속에 은근히 자라난 손톱을 보고 '난 뭔가 달라졌겠지?' 하며, 새로운 출발을 노래한다.

깎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적절히 사용하려는 것이다. 글씨를 쓰려고 연필을 뾰족하게 깎고, 방망이는 옷감을 두드리기 적당하게 깎으며, 과일은 먹기 전에 그 껍질을 깎는다. 조각가는 단단한 돌이나 나무를 깎아 형체를 만들어 간다. 깎는 것은 보통 세심한 칼질이 요구되기에 자르는 일보다 보통 더 어렵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사과 좀 깎아보라고 시켰다가 너무나 서투른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사실 제 손톱 스스로 깎기 시작한 지도 오래지 않았다. 그동안 깎아주기만 했지 깎는 법을 좀처럼 알려주지는 않았었다.


사는 것은 무엇인가 깎으며 다듬는 일의 연속이다. 단지 손발톱과 털에만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 스스로 깎여 다듬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는 잘 모른다. 다만 힘든 순간을 버티고 나면, 스스로 전보다 조금 더 뾰족해지는 것 같다. 사랑도 말하자면 서로 깎아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기 아닌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다만 상대에 대한 뭉툭한 마음을 깎아 조금씩  또렷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사랑이다. 시간의 흐름은 사랑을 다시 뭉툭하게 되돌린다. 그래서, 손톱 깎을 때만이라도 다시 잘 살펴보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         

손톱 깎는 중에 옆에 지나가는 아내에게 물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자라는 게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게 뭐게?"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대답한다. "손톱, 발톱... 그리고, 털 같은데? 나머지 하나는 뭐지?... 음, 뱃살?", "뱃살이야 꼭 계속 자라는 건 아니지.", "모르겠어. 뭐야?"


잠시 뜸을 들인 후 나는 대답했다. "그것은...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랄까..." 아내가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 손톱을 너무 바싹 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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