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운전을 배우겠다고 했다. 사실 '배운다'는 말이 딱 어울리지는 않는다. 아내는 운전 관련해서는 이미 '배운 여자' 다. 면허증은 물론 있고 한때는 종종 운전했지만(맑은, 대낮에, 넓은, 도로라는 제한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면허증을신분증 용도로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족 운전은 내가 도맡은 지 한참이었는데이제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서학원라이딩 범위가 넓어졌다. 남편대리가 주중 항상 가능하진 않으니(물론 무척 협조적이지만) 아내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스스로 우물을 파기시작했다.
아내가 가입한 지역 맘 카페 게시판에는 맞춤 연수가 되는운전 선생님 정보가 많이 올라와 있다고했다. 이를테면 장롱 속 어둠에서 막 나와어리둥절한면허증의 눈을 확 밝혀주는 신통한 분들인데, 그중에 일타강사의 경우는두세 달을 기다려야 수강이 가능하단다. 그분들은 운전 학원 같은 공식 업체 소속 없이 활동하는 프리랜서라서 옛날 용어로 하면 야매 선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내 말을 듣다가이십여 년 전 운전을 처음 배우던 시절 생각이 났다.
뚜벅이 연애를 거쳐 결혼한 직후 소형 중고차를 장만하고제대 직후 따서 모셔놓았던 면허증을 장롱에서 꺼냈다. 무려 1종 보통의 반짝반짝한 면허증. 당시는 시내 주행 없이 학원에서 배운 운전 공식에 따라 코스와 시험장 주행만 통과하면 면허를 딸 수 있었다. 공식만겨우익혀 딴 면허라서 실생활에 도움 안 되기는 근의 공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차가 생겼으니 아내의 지인에게서 운전 연수 선생님을소개받았다. SNS가 없던 시절이라 알음알음 지인 소개로 이뤄지던 야매 운전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운전 교습하는 노란 차 있죠? 그거는요. 사대문 안에 못들어오게 되어있어요. 그리고요.학원 소속 강사는 뜨내기라 열심히 가르칠 유인이 없어요. 저는요. 소개로 영업하는 사람이라 한 분 한 분 정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받아보시고 다른분도 소개해 주세요." 자기 차를 몰고 회사 앞으로 온 그가 첫 수업을시작했다. 액셀과 브레이크 밟는 연습을 반복한 후에 바로 출발, 을지로의 회사에서 일산에 있는 집까지의 1시간 정도 퇴근길이 연수 시간이었다. 마음은 후덜덜 심장은 콩닥거렸지만, 어찌어찌 집 근처에 도착하면 차를 대놓고 그날의 반성과 운전 이론으로 하루 수업을마무리했다.
주말에는 집앞으로 찾아와 내 차를 몰고 같이 서울로 나갔다. "자 오늘은 심화 코스로 가시지요."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그의 말 따라간 곳은 이름만 듣던 북악 스카이웨이. 북악산을 둘러싼 구불구불한 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그렇게 쫄면 안 된다고 속도를 더 내시라고 액셀 밟으시라고... 그곳뿐 아니다. 이대 앞 상점들 사이 좁은 사잇길로 사람들을 홍해 같이 가르며 지나야 했고, 대학로 자주 가면서도 미처 몰랐던 마로니에 공원 뒤편 달동네 같은 좁은 길도 올라갔다. 한 번은 물어보았다. "보조 브레이크나 그런 장치 다 있으시지요?" "그럼요. 걱정하지 말고 운전하세요. 다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조수석에 앉은 그의 왼손이 사이드브레이크를 꼭 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야매 선생님께 힘들게 운전을 익혀서인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십 년 넘게 별 탈 없이 차를 잘 몰고 다녔다. '야매'는 뒷거래라는 뜻의 일본말 '야미'에서 왔다. 보통 자격 없이 활동하는 이들을 말하는데 자격 있는 이만큼 잘해야 야매 소리라도 듣는다. 아내가 운전을 시작하면서 차 뒷유리에다초보운전 스티커를 사서 붙였다. 스티커 붙이고 운전해보니 뒤차도 간격을 좀 더 띄워주는 것 같고 처음 가는 길에 조금 어리바리해도 확실히 부담이 덜하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는 일도 다 초보에다 야매다. 한번 사는 인생이라 그때그때 다 처음 하는 일이고 많은 일을 자격 없이 처리한다. 아들 자격증, 남편이나 부모 자격증이 있던가. 좀 서툴러도 그냥 그런가보다 고쳐가고 챙겨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초보 야매의 삶이다. 오늘따라 내리막길에라도 주눅 들거나 쫄지말고 액셀 밟아가며 달리라고 했던 옛 야매 선생의 가르침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