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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Dec 15. 2019

나이의 유효기간

살아감과 죽어감 사이

한 해가 지나면 새로운 나이를 '먹는다'. 그런데 조금 어리바리하다 보면 미처 소화도 못 시킨 채로 다음 나이를 먹어야 할 때가 다가온다. 나이가 많아지는 것을 또 나이가 '든다'라고도 하는데, 나이가 어딘가로 스윽 들어온다는 건지, 그 나이의 색에 무엇인가 물든다는 건지, 나이를 번쩍 들어 올려야 한다는 건지 모르지만 역시 이들 또한 수월하지 않다. 나이에 대한 소화력과 수용력이 필요할 터인데, 정신을 탈탈 털며 지나가는 시간에 휩싸이다 보니 직까지도 나이를 제대로 못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나도 물론 그렇지만, 지금 살아있는 사람 모두는 태어나본 경험은 있으나 또한 누구도 죽어본 없다.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기억은 없으나 아마 태어났으니 살고 있을 것이고, 죽기야 하겠으나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는 것이라서, 그냥 태어남과 죽음 사이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다. 태어남을 기준으로 보면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죽음을 기준으로는 점점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죽음의 에티켓'이라는 책은 살아감과 죽어감 사이에서 죽음에 근접한 삶과 그 이후를 이야한다. 나이가 들고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며, 가까운 사람들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게 되고, 마침내 폐와 심장이  기능을 멈춘 이후 장례 과정을 거치는 자기 자신을 담담하게 바라보게 한다. 죽음이라는 처음 보는 손님이 달갑지 않은 불청객일지라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마지막 손님을 잘 맞이하게 하는 선행 학습 가이드북이다.


태어남을 기준으로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처음으로 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첫울음으로 시작하여, 처음으로 말을 하고, 첫걸음을 떼고, 처음 학교에 입학하고, 첫사랑을 하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거나, 직업을 가지는 일들을 차례로 겪으며 성장한다.


반면 죽음을 기준으로 보면 죽어간다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보통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데, 그게 내 삶의 마지막 시험이었구나, 부모님과의 마지막 여행이었네, 마지막으로 산에 오른 것이었지, 마지막으로 본 벚꽃이었어, 그리고 마지막 호흡까지. 삶은 드라마와 달리 마지막 회를 예고하지 않으며, 끝나야지 비로소 그게 마지막 회였음을 알게 된다.

입시나 결혼식 같은 중요한 일이 다가올수록,  일이 있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늘어나고 점차 가까운 사람으로 범위가 좁혀짐을 실감한다. 가끔 보는 친척에서 친구들로, 그리고 가족들로. "시험 잘 봐라." 또는 "다음에 연락하자."라는 말로 헤어졌다가, 그 일이 지나면 반대로 가까운 사람부터 다시 만나게 된다. 가족, 친구에서 다시 가끔씩 보는 친척으. "시험 잘 봤니?" 또는 "결혼하니까 좋아?" 하면서. 다만 죽음에 있어서는 이런 후반전이 없다. 마치 잠드는 시간은 있지만 깨어나는 시간이 없는 것처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있다. 세상 정말 정직한 요리 이름이 떡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떡을 볶았으니 그 이름이 떡볶이다. 양념이 매우면 매운 떡볶이고 순하면 순한 떡볶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삶을 그냥 떡볶이처럼 바라보면, 순할 때가 있고 가끔 매울 때만 있지 산다는 것은 참 단순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폐로 산소를 걸러내고, 심장은 그 산소를 적혈구에 실어 몸 곳곳에 보내면서 살아간다. 둘 중 하나라도 멈추면 바로 죽음이다. 사람인 이상 서로 유전자는 99.5% 같고 단지 0.5% 정도만 다른데도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에 집착해서 피곤한 일을 스스로 많이 만든다.  

우리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는 감는데, 태어나고 죽는 것과 그 모양이 다르지 않다. 그렇게 지나는 하루의 시간은 어찌 보면 삶과 죽음이 매일 반복되는 일이다. 그 반복의 일상 속에서 무엇인가 처음으로 하는 일이 많아진다면 살아가는 것에 가깝고,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많아진다면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에 가까워지겠다. 그래서 가능하면 무엇인가 꾸준하게 계속하는 일은 폐나 심장에게 맡기고, 혹시 꾸준할 자신은 없어 넘어져 뒹굴고 탈탈 털리더라도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계속 시도하는 것이 좋다.

나이는 흔히 말하듯이 먹거나 드는 것이라기보다는, 각자 가지고 태어난 정해진 나이에서 매년 하나씩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지고 있는 유효기간 1년인 나이를 매년 초에 하나씩 꺼내어 1년 동안 쓰는 일이 한 해를 사는 일이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유효기간 얼마 안 남은 지금 나이를 어떻게 새로운 일에 잘 써서 한 해를 잘 마무리할지 잘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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