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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Aug 25. 2022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_김영하 소설

트레바리 '책은 나의 음악' 선정도서 독후감

영화에서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음악이 흐르고 있다. 때론 잔잔하거나 감미롭고, 긴박하거나 음산한 배경 음악은 주인공의 감정이나 그가 처한 상황을 증폭하여 나에게 전한다. 가끔 일상이 너무 단조롭게 느껴질 때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무료하게 흐르던 생활이 음악을 통해 고조되며, 삶은 내가 주연인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된다. 주연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줄거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혹시나 삶이 붕괴되었다고 느끼거나 헤어질 결심을 단단히 했더라도 파도에 묻혀 사라지는 일은 거의 영화의 끝부분인 것이다.


영화의 주연인 우리는 굳이 자진해서 영화를 속히 끝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비록 스펙터클이나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있는 별 볼 일 없는 영화라도, 세 끗짜리 인생의 배역을 맡고 있더라도, 멀리 와도 줄거리가 별로 바뀐 것이 없더라도, 굳이 흥행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 영화 촬영을 끝까지 묵묵히 이어간다. 굳이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죽음의 집으로 먼저 달려들어가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행사했다기보다는 삶을 포기했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표현을 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행인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가 딱지 치기 게임을 권한다거나 클림트를 좋아하느냐고 슬쩍 이야기를 걸더라도, 명함을 전해주며 연락하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그냥 무심히, 도에 대해 관심 있느냐고 묻거나 스티커를 내밀며 붙여달라는 이들을 대하는 것 마냥, 우리는 쿨하게 그냥 무시하며 지나치고 다. 파괴할 권리보다는 지켜야 하는 의무가 우선인 우리는,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며 자전거를 배우고, 갓길에서는 엑셀레이터를 밟아야 전복을 피할 수 있다는 기술을 터득하며 삶을 그나마 무사히 운전해 가는 것이다.   


매혹은 항상 달콤하다. 추파춥스나 콜라, 나비, 북극, 스피드 또는 퍼포먼스에 대한 매혹, 또는 중독. 죽음으로의 유혹도 이와 같았을까.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 신이 되고픈 한 인간의 유혹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때 음악이 있었다. 쳇 베이커, 레너드 코헨의 바닥을 긁는 듯한 거친 저음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유혹의 한 축을 담당했다. 왜일까? 오늘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금 내가 주연인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이다. 부디 치명적인 유혹은 아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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