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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r 05. 2023

수습과 속수무책

올해는 양력과 음력설이 모두 1월에 있다 보니 새해 인사 주고받다가 1월을 다 보냈다. 1월이 금방 지나갔네 하다 보니 2월도 지나고 이제 3월이다. 작년 말부터 작지 않은 변화들을 겪다 보니 정신이 좀 없었나 보다. 선물 받은 모바일 쿠폰을 쓰려고 보니 몇 개는 이미 기한이 지나버렸다.  


'수습'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흩어지고 어수선한 물건이나 마음을 거두어 바로 잡는 일을 '수습'이라 한다. '정리'와 비슷한 듯 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수습'에는 '차곡차곡' 보다 '주섬주섬'이, '찬찬히' 보다 '우선'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눈앞에 널려 있는 것들 먼저 치우고, 벌어진 일은 받아들일 궁리를 하며, 미뤘던 일은 조금씩 해보자 생각한다. 수습하는 과정 속에 일상으로 들어오는 일이 늘어나면 뭔가 더 정리되겠지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지루한 일상도 늘어나려나 싶다.


건강 검진 받을 때면 마지막 차례인 수면 내시경을 기대하곤 했다. "자, 주사약 들어갑니다." 하는 순간 마취를 참아보면서 매번 느끼는 그 '어쩔 수 없음'이 신기해서다. 피하려고 애를 써도 그냥 까무룩 기절하듯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금은 재밌는 '속수무책', 마치 잠시 죽었다 깨는 듯 짧은 체험 시간.


그런데 요즘은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그 반대와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암흑으로 가득 찬 공간에 아주 드물게 빛나는 별들이 우주를 구성하는 것처럼, 오랜 무생물의 시간 중 아주 짧게 등장하는 마취와 같은 순간이 나의 삶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우연에 우연이 겹쳐 얻어진 짧은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돌로 만나는 엄마와 딸

삶에서 이별, 사랑, 고난이나 행복 등 많은 일은 그냥 모두 속수무책으로 다가온다. 자연의 질서가 대개 그런 것 같다. 봄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나무도, 심장 박동도, 태양을 도는 지구도, 흐르는 시간도...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는 일, 어쩔 수 없이 그냥 벌어지고야 마는 일. 세상의 온갖 속수무책들을 받아들여 주섬주섬 수습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의 모든 속수무책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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