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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사람이 어때서

by have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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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 했다. 잘 안 맞아도 어지간하면 잘 지내고 오래 보려고 했다. 세상은 좁고 또 볼 사람이니까. 쏭당쏭당 사람들을 다 오려내면 곁에 아무도 없을 것이고, 나도 부족한 점은 있을 테니까 참자 싶었다. 어릴 적엔 별로 미안하지 않아도 먼저 사과했다. 상황은 불편하고 상대방은 할 생각이 없고,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끝나니까. 화해하라고 종용하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어른들이 착하고 마음 넓은 사람이 사과하는 거라고 할 때 시작을 말 걸 그랬다. 못 하고, 안 해요. 이렇게 속 좁은 사람인 걸 알았더라면.


속 좁은 사람으로서 위험한 건 감정 삼인방이 치밀어 오를 때다. 이름하야 서운함, 질투, 불신.

먼저 서운함. 위험하진 않지만 쌓이면 무시할 수 없다. 온갖 이유로 당신에게 서운하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을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최우선인데 당신에게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다. 나만 몰랐던 당신의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나를 알만큼 알 텐데 당신은 기억하지 못한다. 배려 없는 ‘실수’가 반복된다. 확실하다. 당신은 내게 무관심하다.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가 연말에 편지를 한 통 써주었다. 편지고 연말이니 훈훈한 내용을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여태까지 받아 본 편지 중에 가장 서운함이 넘치는 편지였다. 내가 같이 매점 한 번 가자고 했는데 결국 그 해에 한 번도 같이 가지 않았다며 서운했다는 게 골자였다. 음, 거의 모든 청문회에서 나오는 말인데,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줄 알았으면 매점 좀 같이 갈 걸. 왜 말해놓고 기억도 못한 걸까. 이상하긴 했다. 왜 그 때가 아니라 왜 이렇게 한참 지나서 얘기했을까? 당황스러웠다.


답장은 써야겠다 싶어 편지지를 꺼내들었고 막상 채워나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마음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 변명이겠지만 덜렁거려서 말해놓고 잊어버린 모양이다. 빈 말 아니니 언제라도 시간 될 때 말하면 매점도 가자. 내가 쏘겠다.


인상 깊었다. 친구는 나와 달리 서운함을 ‘표현’했다. 그만한 일에 서운해? 속 좁아 보이긴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실상 속 좁은 건 나였다. 나는 서운해도 말하지 않았다. 혼자 서운하고 혼자 풀었다. 표현하면 빠를 걸 어려운 길을 택했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췄다. 기대를 낮추면 서운할 일도 줄어든다. 내 마음은 선물이니 대가를 바라지도, 서운해 말자고 선을 그었다. 길을 잃은 서운함은 높은 벽을 쌓았다. 누군가는 그 벽이, 내가 기대하지 않고, 서운하지도 않아서 되려 서운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맙고 미안하다. 서운함은 마음을 주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거니까.


질투.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잘 되고, 사랑받고 빛나면 질투의 요건이 성립한다. 물론 다들 나만 바라보거나 세상 모든 행운과 성공이 나에게만 오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자,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축하해. 잘 됐다. 잘 된 건 좋은데 나는 뭐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대인배처럼 순도 100%의 축하를 해주기 힘들 때마다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질투가 순기능을 하면 내가 더 발전하고 사이가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질투의 밑바닥에는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이 어디까지 힘을 뻗칠지 모른다는 게 복병이다.


마지막은 불신. 평생 친구, 베스트 프렌드, 너밖에 없다는 말에 설레곤 했다. 그러나 믿음의 난이도는 갈수록 높아진다. 사람을 믿어보겠다고? 언제까지 믿을 수 있나 보자.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많은 뒷담화와 뒤통수를 경험했다. 믿음을 저버리면 다시 쌓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산불로 새카맣게 타버린 산에 다시 나무가 자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깨진 믿음에 그 정도 노력을 기울이는 이는 드물다. 지금 좋다고 계속 좋은 게 아니다. 좋을 땐 무슨 말인들 못하나.


믿음은 중요하지만 이만큼 뚜렷한 신기루는 없는 듯하다. 안 믿자니 마음이 팍팍하고 믿자니 겁이 난다. 불신이 기본값이다. 새로운 사람이 궁금하고, 익숙한 사람과 잘 지내고 있어도 걱정된다. 이 사람, 이 사이는 믿어도 될까? 진심일까? 끝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겨서 지금을 마음 편히 즐기지 못했다 믿음이 사라진 자리엔 가시가 돋아서 다른 이들이 가까이 오면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어리석은 줄 알지만, 어렵더라. 속이 뒤틀린 모양이다.


밴댕이 소갈딱지만큼 가엾게도 속 좁은 인간이다. 가만히 있자니 답답하고 말하자니 속 좁은 걸 들키긴 싫다. 예전엔 후자가, 지금은 전자가 이긴다. 아직도 어색하지만 큰 맘 먹고 말한다. 당신에게 서운했다고. 질투도 나고, 믿고는 싶은데 온전히 믿기가 어렵다고. 내가 당신을 생각하듯 당신도 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마음 안에 내가 있었음 좋겠고, 당신이 필요한 순간에 내 곁에 있었음 좋겠다. 이게 내 속의 전부다. 내 속을 훤히 보는 건 별로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며 고통스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싫다. 인정하겠다.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속 좁은 게 어때서? 속이 다 시원하구만.


안다. 모든 감정은 다 지나간다. 그렇다고 시간이 다 해결해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감정이 남아 있다면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 속 좁은 진솔함이 당신과의 평화를 깨뜨리더라도. 애당초 그 평화는 침묵으로 유지된 것이니까. 당신은 나처럼 기억이 안 난다고 할지도 모르니까. 수없이 말하기 애매하고 쪼잔한 것들이 마음 속에 있다. 어차피 속 좁은 사람일거라면 투명하게 속 좁은 사람이 되겠다. 도망치지 않고, 숨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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