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공포 소설을 자주 접한 적이 없었다. 범죄나 추리소설을 많이 접해서인지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거나 사라지는 건 무섭지 않았다. 두렵거나 무서울 거라는 예상을 한 것에 비해 그렇지 않아서 처음에 당황했다. 다행스럽게도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책장을 넘길수록 따로인 것 같던 22개의 단편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이 없거나, 이상한 기시감이 들고, 반쪽뿐인 완전하지 않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태어난 사산아'에서 나오는 상담사는 얼굴은 같지만 낮과 밤에 따라 전혀 다르다. 바나나와 사과의 공통점이 과일이 아니라 '껍질이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바나나는 껍질을 먹을 수 없고, 사과는 껍질을 먹을 수 있다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도 말이다.
라르스는 놓여 있는 안락의자 두 개 중 하나에 앉았다. 의자에 앉기 직전, 그곳에 놓여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고무로 만든 담요처럼 보이는 그 물체는 속이 비쳐 보였고,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색도 특이했는데, 지저분한 분홍색인 것으로 보아 돼지가죽을 얇게 늘이거나 모종의 방법으로 가공해서 투명하게 만든 것 같았다. 감촉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벽난로가 가까이 있어서일까. 두 손으로 집어 올려 살펴보니 담요보다는 무언가의 껍질에 더 가까웠다. 안쪽으로 들어가 입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사람 크기였으며, 사람 형체이기도 했다. - p.30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있었어." 그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어쩌면 얼굴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남자는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사람이 아니었지. 아마 궁금할 거야. 그렇다면 왜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사는거지?
대체 왜일까?
하지만 이건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야.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데에는 이유가 없어. 혹시나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어떠한 차이도, 변화도 만들어 낼 수 없지."
"그 남자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꽤 많은 면에서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람은 아니었고, 가끔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진짜 자신이 새어 나가기도 했어."
"뭐라고요?" 라르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새어 나갔다고." 남자는 의자를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왔다. 적어도 라르스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새어 나갔어."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설명이 아니라고 이미 말했잖아. 조용히 들으라고."
"그렇게 긴장을 풀고 새어 나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때도 있었어. 가끔 그렇게 있을 때 사람들이 따라오기도 했는데, 그 남자는 사람들과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어. 아니,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했지. 이따금 그 남자가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때면 적어도 그 사람들 중 한 명에게 들어가면 되니까."
남자가 불쑥 다가와 라르스의 뺨을 만졌다. 라르스는 얼굴에 온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너무 차가워서 따뜻하게 느껴진 것일지도 몰랐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가끔,"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 " 그 남자는 누군가의 안에 들어가서 한동안 그곳에 머무르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삼켜 버려."
- p.34-35 새어 나오다
껍질, 껍데기는 책을 관통하는 소재로 나온다. 친절하게 이 존재가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과 비슷하다고 설명을 해주고 있다. 다른 이야기에서 그것은 다리가 많은 촉수 같은 존재, 전기선을 타고 옮겨 다니는 존재로 나온다. 틈을 통해 당신을 지켜보고, 당신의 몸을 집어삼킨다. 당신은 피할 방법이 없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도망칠 수도 없다.
이들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고 어떤 차이나 변화도 없다고' 말하지만 식사든 생존이든 모종의 이유로 사람의 몸을 필요로 하는 이상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 게 더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맹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껍데기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매들'에서는 이 문제에 더 합리적인 이유를 알려준다. 인간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면 인간의 가죽을 자주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니, 편리함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1인 1몸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몸은 넓은 공간이라 여러 개체가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할로윈 하나도 이해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유투브를 보면 이 존재들은 인간과 가까워지는 목표를 빨리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알지 못한 게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스마트폰을 들지 않은 인간을 찾기가 더 어려울 텐데.
몸만 빌려 쓰는 특성상 100% 대체가 되는 것이 아니므로 자연스럽게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긴다. <두 번째 문>에서는 자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동생은 어느 날부터 언니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언니의 글씨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언니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목소리나 글씨는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언니인 척하는 것'임을 알아차린다. 진짜 언니는? 유리 너머 어둠 속에 있다.
'룸 톤' '셔츠와 가죽' '실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다. 미지의 이질적인 존재가 사람을 집어삼키기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친숙해서 그렇다.
어쩌면 그 방, 몇 달 전에 그 방에서 필립이 촬영했던 장면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난 오 년을 모두 쏟아부은 인생작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메이슨 씨가 인간적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짜증 나게 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뭐였든 몇 분 뒤 입에 물고 있던 재갈을 뺏을 때, 메이슨 씨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중략)
필립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서 있었다. 딱히 바뀐 것은 없었다. 아니, 메이슨 씨의 시체가 룸톤을 미묘하게 바꾸어 놓았다. 필립은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겠지만, 어쨌든 필립에게는 들렸다. 필립은 확신했다. 지금의 룸톤이 더 좋았다.
그래서 필립은 피 묻은 양말을 신은 채 다시 녹음기를 켰다. 이 소리가 영화를 완성해 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좋은 정도가 아니라 완벽해질 것이고,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필립이 유일한 것이다.
p.122 룸톤
'룸톤'은 자신의 촬영에 진심인 필립이 촬영을 하고도 룸톤을 맞추기 위해 다시 집주인 허락도 없이 몰래 집에 촬영을 하러 간다. 좋게 좋게 넘어가 보려고 했지만, 집주인이 자신의 영화를 모욕하고 협박하면서 그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집주인을 살해한다. 이제야 조용해졌다고 좋아하질 않나, 집주인이 죽고 나니 룸톤이 완벽해졌다면서 좋아하는 게 보통 집착이 아니다. 영화 '블랙 스완'이 생각났다. 신경 쓰이던 릴리를 죽였다고 생각하고선 정말 제대로 된 흑조가 되어버린 니나의 마지막 대사도 "I was perfect."여서일 것이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내가 원래 이랬나? 그레고리는 의아했다. 원래 이렇게 수동적이었나? 가장 걱정스러운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아니다'였다. 누군가를 만난 경험은 이전에도 있었다. 인정하건대 그 관계들은 전부 잘 풀리지 않았으며, 과정이 평탄했었다 해도 끝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말할 수는 있었다.
(중략)
"헤어지고 싶어." 그레고리가 겨우 말을 꺼냈다. 자기 생각을 꺼내 놓을 수 있을 때 말하고 싶었다.
"아니야." 메건이 말했다.
"아니라고?"
"들었잖아," 그녀가 말했다.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레고리는 메건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아니면 내가 당신과 헤어질 수 없다는 소리야?"
"둘 다야."
(중략)
그레고리는 대체 왜 메건에게 솔직해질 수 없는 것일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닌가? 지금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나머지 이제 그레고리 혼자 이 관계를 끊어 내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대체 어떻게 끊어 낸다는 말인가? 그냥 "메건, 나는 당신을 만난 그 순간부터 계속 불행했어"라고 말하고 떠나 버리면 되는 것일까? 그는 왜 며칠, 몇 달, 몇 년이 되도록 메건에게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것일까?
아니, 그레고리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만약 자신의 진심을 말했다고 해도 메건은 이를 아주 쉬이 부정해 버리고는 관계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를 이어 갈 테니까.
메건은 그레고리보다 나이가 많았다. 어쩌면 그녀가 먼저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이나 사십 년 후, 마침내 그는 몇 년쯤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
p.116-121 셔츠와 가죽
인용된 부분만 보면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스스로를 불만스러워하는 커플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목부터 '셔츠와 가죽'이다. 그 존재들 역시 사람처럼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메건은 그레고리를 조종하고, 거짓말을 일삼고, 상황을 왜곡한다. 가끔은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다른 이야기들에서 인간들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정신적으로는 그들을 만나면 기억을 잘하지 못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레고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자신도 알고 있으면서도 헤어질 수 없다는 게 괴로울 뿐이다. 메건은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 그레고리가 가장 좋았다고 하는 걸 보면 늘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세뇌를 일삼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사람을 많이 이해한 축에 속해서 하나의 몸에 정착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녀라면 다른 가죽을 입게 되더라도 난 원래부터 이렇게 생겼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셔츠 전시를, 나중엔 가죽 전시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셔츠 전시가 그녀를 이해하는 입문편이라면, 가죽 전시는 결혼을 앞두고 실전편이다.
영화 '겟 아웃'이 잠깐 떠올랐지만 결말은 다르다. 이상하게도 그레고리는 그녀와 헤어지진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가죽 전시를 보면서 오히려 다른 이의 가죽에 들어가는 '황홀한'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그가 현재 불행한 건 인간의 관점에서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의 가죽으로 들어가면 정말 둘은 환상적인 커플이 될지도 모르는 일.
잠자는 동안 꿈을 꾸었다. 우리 셋, 나와 제라드와 그의 아내가 모두 살아 있었던 그때가 꿈에 나왔다. 제라드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행복했던 몇 달이 아니라 그다음, 그녀가 나를 찾아와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제라드가 아니라 나이며, 너무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 왔기 때문에 이제야 깨달았다고 고백하던 그때가. 그녀가 그동안 우리가 친구였기 때문에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녀가 내게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래도록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나는 그 고백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렇게 나는 그녀의 '내연남'이 되었다.
(중략)
그러다 궁금해졌다. 만약 내가 기다린다면 그녀의 결혼 생활은 끝나게 될까? 그녀가 말한 이 마지막 시도가 틀어지면 그녀는 나에게 돌아올까? 나는 누군가에게 빌린 이 숙소 안에서 침대에 누와 내 삶과 그녀의 삶을, 지난 몇 년간 이따금 방황하며 잠깐씩 제라드를 떠나 내게서 안정을 찾으려도 하다가도 늘 그에게 다시 돌아가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그녀는 설사 그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제라드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갔다. 나는 내가 그녀와 함께할 수도,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으며, 해가 갈수록 서서히 메말라 가는 삶을 살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식으로 일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가 목숨을 잃는 그런 행운이 따라 자유를 얻기 전까지, 나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내 안에 분노와 수치심이 자라났고, 나는 결국 그녀를 죽이기로 했다.
p.168-169 실종
나왔다. 최애 이야기는 역시 치정이다. 현실에서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는 의견이 갈리지만, 이야기에서는 대체로 친구가 없다. 갑자기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한, 나의 오래된 여자사람 친구가 실종됐다면? 이건 남편보다는 남자 사람 친구를 의심해 보는 게 좋다. 내연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죽였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걸 보는 걸로도 즐거웠다.
불륜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욕심으로 시작해서 죄책감을 안고 금기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일편단심이나 영원한 사랑, 혹은 적어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게 '옳다'라고 알려주지만 사람은 늘 옳은 일만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니까. 남편도 사랑하지만, 오래된 남자 사람 친구도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그리 놀랍지는 않은 이유다. 그러나 대체로 내연관계에 있는 사람과 정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진 않다. 결국은 자신의 아내나 남편에게 돌아가곤 하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완벽한 사람이 없기에 그녀가 남편인 제라드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공간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당했다. 여전히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나자고 하면 만나고,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질 걸 알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걸 알았기 때문에 그는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 것이다. 그도 이 모든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남편인 제라드에게 대단하게 헌신하기 위해 그를 헌신짝처럼 버린 거라면 그 이유는 감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죽이고, 남편인 제라드도 죽였다. 제라드가 그가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고 제라드까지 사라져야 그가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포함해 이 책에선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들이 고의였든, 우발적이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곤 한다. 방화, 살인, 납치 등 그 모든 것은 다 상대방의 잘못이고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이질적인 존재들마저 인간에 대해 이런 점은 이미 배웠다. 몸을 편리하게 나눠쓰자고 하면서 회유도 해보지만 어차피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여차해서 곤란하면 죽이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랑하던 날들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스크는 알고 있었다. 젊은 자신은 아직도 멈추지 못하고 방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약 그 자아가 방랑을 멈춘다면, 이유는 오직 그 자아의 젊은 자아가 대신 방랑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젊은 자신은 늘 방랑할 것이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p.208-209 방랑의 시간
'껍질'이 이 책을 관통하는 소재라면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여기에 담긴 모든 이야기의 줄기다. 그 존재들은 인간의 껍질을 얻는 걸 피할 수 없고, 인간은 자신의 껍질을 넘기는 걸 막을 수 없다. '방랑의 시간'의 라스크처럼 이상한 느낌을 받고 계속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녀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공간을 뛰어넘어 시간 속에서도 결국은 계속 도망은 계속된다. 평생을 계속 방랑할지 혹은 그들을 받아들일지. 우리에겐 이 두 가지 선택지뿐이다.
가끔은 이 세상이나 나 자신조차 진짜가 아닐지도 모르고, 능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종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피할 수 없이 껍질뿐인 삶을 살고 있다면 허무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이른 날에 비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받아들이게 됐다. 인간이면서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싫어하기도 했고,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이면서 이렇게나 잔인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확연하게 나쁜 사람보다도 애매하게 좋으면서 나쁜 사람에게 더 타격이 크기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도.
사람은 작가가 말한 '그 존재들'이나 타인에게 삼켜질 수도 있고 혹은 스스로를 삼킬 수도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상하게도 '늘 방랑할 것이라는 말'이 뜬금없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했던 방랑은 인간을 선악으로 나누고, 일관성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모순에 빠진 것이었다. 가장 자주 하게 된 말이 '그럴 수도 있지'가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만 정말 특별한 이유도 없다. 물론 그럴 수 있다는 건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거나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피할 수 없다는 건 그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겐 우리보다 더 크고 위대한 존재, 운명 같은 것들이 있으니까. 다만 여기 나온 인물들이 말한 '피할 수 없는 것'이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는 생각해 보게 된다. 벗어날 수 없다고 했지만 과연 그런가?
- 이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