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아침산책을 한다. 우울은 힘이 세다. 애써 뿌리치지 않으면 나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아침 바람과 햇살에, 숨이 차고 힘들다는 감각에 기분을 떨쳐버린다.
아침에 일어날 때 알 수 없는 불안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쓰는 글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불안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밀려오면 대책이 없어진다. 아무것도 없이 새하얗게 펼치진 이 큰 도화지 같은 하루를 오늘도 어떻게 채워 나갈까. 매일 나에겐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가 숙제다.
아침산책으로 시작의 불안을 날리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면 한 시간이 지난다. 그러고 나서 조금 쉬다가 어제 쓰던 글을 고치거나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한다.
요새 내가 하는 일은 오직 글쓰기밖에 없다. 그마저도 오래 할 수는 없다. 세 시간이 넘어가면 편두통으로 남은 하루를 까만 방에서 가만히 누운 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삼십 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타이머가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쉬고 더 쓰고 싶으면 다시 타이머를 맞춰 쓰는 식이다. 세 시간이라고 했지만 타이머를 맞춰 쓰는 건 최대 세 번, 한 시간 반 까지만 가능하고 나머지 시간은 조금 헐렁하게 글을 다시 읽으며 고치는 시간이다. 고치는 시간은 타이머로 재지 않는다.
중간에 점심도 먹고 다이어리도 조금 적는다. 그래도 시간은 차고 넘친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보, 나 일할까?’
집에서만 하루를 다 보내는 것이 막막해 남편에게 물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체력으론 출근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해 본 말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몸이 낫는 중이라 무리하지 않고 집에서 쉬며 약간의 산책과 글쓰기를 한다. 날마다 하얀 도화지가 펼쳐지는 날들은 솔직히 지루하다. 막막하기만 하다.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내 인생이 바뀌긴 할는지 생각해봤다. 글을 완성해서 책을 내면 좀 달라질까? 그래도 여전히 집에서 혼자 글을 쓰고 있는 건 변함없을 것 같다.
몸이 좀 더 나아져서 수영을 하게 되면 좀 달라질까? 하루에 한 시간은 분명히 행복해질 테니 달라질 거다. 하지만 시간은 다 해서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앞으로도 글을 쓰는 삶을 사려는 나는 미래에도 이렇게 날마다 하얀 도화지가 펼쳐지는 하루가 특별히 다르진 않을 것 같다. 하루는 너무 길고 그걸 내가 다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함이 느껴질 것 같다. 그런 인생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써야 할 글이나 해야 할 일이 생겨나서 괜찮아지는 걸까? 내 하루에 다른 스케줄들이 생겨날까?
일주일은 빠르지만 하루는 길다. 길고 길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해 본다. 회사에 나가면 내가 채워야 할 하루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요새 막막하다. 이렇게 하루가 너무 길어 어찌할 바 모르는 채로 평생을 살아야 할까 봐 불안하다. 이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고 싶진 않다.
지금은 내가 아직 아파서 이런 걸까? 몸이 낫고 나면 바깥에 더 나갈 수 있고 하얀 도화지가 더 이상 부담으로만 다가오지 않을까?
지금은 힘들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채워야 할까? 내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멈춰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기가 이 몇 년 만이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살 만한 날들이 펼쳐지질 바랄 뿐이다. 매일 아침을 막막함으로 시작하지 않게 되길 바라게 될 뿐이다. 괜찮은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