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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Jun 23. 2024

두 원작으로 만든 타워링(1974)

고층 건물의 화재를 다룬 재난 영화의 고전이자 마스터피스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은 1970년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한국의 대연각 호텔 화재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런 발언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 타워링(1974)이라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면 왜 대연각 호텔 화재를 모델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납득할 수 있다.

1973년 두 편의 소설이 각각 영화의 원작으로 선정되는데, 하나는 더 월드 타워라는 고층건물이 화재에 휩싸이고 부소방서장을 비롯한 여러 캐릭터가 화재를 진화한다는 내용의 '더 타워', 그리고 또 하나는 66층의 고층 건물이 화재에 휩싸이고 건설 비용을 절약하려고 소방 안전 설비가 충분히 설치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된 해당 빌딩을 설계한 건축가가 화재를 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더 글라스 인페르노' 두 작품으로 '더 타워'는 워너 브라더스 '더 글라스 인페르노'는 폭스에게 팔려서 영화화가 진행된다.

당시 해난 재난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의 대성공으로 재난 영화에 대한 기획이 많이 나오던 때이기도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거의 같은 내용의 고층 빌딩 화재를 다룬 소설이 두 편이나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 편의 소설과 실제 대연각 호텔 화재의 공통점은 건물주가 탐욕을 부려 돈을 아낄 목적으로 소방 설비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데다. 방화벽이나 방화문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연돌효과로 인해 화재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진 것도 두 소설과 대연각 호텔 화재와의 공통점이다. 우연이라기보다는 당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대연각 화재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 것이 사실일 것이다. 애초에 대연각 호텔 화재가 모델이 아니었다면 두 작품은 한쪽이 한쪽을 베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닮은 작품이라 표절 논란이 일었을 테고 두 작품이 합작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타워링 인페르노는 두 소설의 원작을 가진 영화사가 합작을 해서 나온 작품이다. 이런 사례가 타워링 이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1960년에 오스카 와일드를 다룬 두 작품이 1965년에는 짧은 생을 살았던 배우 진 할로우를 그린 영화가 5주 차이로 개봉해서 별 재미를 못 본 사례가 있었다. 같은 아이템을 서로 맞 붙였다가 공멸한 사례는 영화계에 굉장히 많았고, 타워링 인페르노는 그런 공멸을 피하기 위해 두 개의 원작을 섞어서 두 영화사가 같이 영화를 찍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영화에도 역사에 남은 '같은 아이템 빅 매치'가 있었는데, 바로 1961년 성춘향과 춘향전의 대결이었다. 홍성기 감독, 김지미 배우 주연의 성춘향과 신상옥 감독, 최은희 배우 주연의 춘향전이 1961년에 맞붙은 것이다. 두 작품은 당시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컬러 시네마스코프 촬영의 대작이었고, 제작비 규모도 8 천만환으로 비슷해서 시작부터 '홍춘향', '신춘향'이라 불리며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영화 제작자 협회에 '내용의 3분의 1이 같을 경우 제작을 허가하지 않는다.'라는 규약이 있었고 먼저 제작신청을 한 신상옥 감독이 이의를 제기했고 영제협이 이의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영제협 조용진 회장이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 제작을 허가하면서 영제협이 성춘향을 지지하는 신파와 춘향전을 허가한 조용진 회장의 구파로 나뉘어서 분쟁을 벌였고, '춘향전분규'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 한국을 대표하던 흥행 감독이던 홍성기 감독과 원작 성춘향에 가까운 나이인 20대의 김지미 배우가 출연하는 '춘향전'이 비교적 신인이었던 신상옥 감독과 30대의 최은희 배우가 출연하는 '성춘향'을 쉽게 이길 것이라고 다들 예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신상옥 감독의 대승으로 '성춘향'은 서울 관객 36만 명을 달성해서 1969년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았다.

타워링 이야기를 하다가 춘향전 영화 이야기를 더 많이 할 것 같은데. 타워링은 20세기 폭스와 워너 브라더스의 합작으로 완성되었다. 두 개의 원작을 합쳤다는 제일 큰 증거는 두 명의 주인공, 소방대장의 스티브 맥퀸과 건축가인 폴 뉴먼으로 각각 다른 작품의 주인공을 하나의 화재 현장에 투입한 듯한 작품이 되었다.

두 배우의 기싸움이 아주 어마어마했다고 전해지는데, 서로 최고의 개런티를 요구한 것은 물론이고 크레디트에 올라가는 이름의 크기와 위치에도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심지어 두 배우가 등장하는 시간도 동일한데. 후반부에 등장해서 클라이맥스에 활약하는 소방대장 역의 스티브 맥퀸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아서 폴 뉴먼 배우가 불만을 터트렸다는 이야기도 남아있다.

배우만 둘로 나뉜 게 아니라 감독도 둘로 나뉘었는데,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어윈 앨런 감독이 액션 장면을 찍고, 감독에 이름을 올린 존 길러민이 드라마 장면을 찍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래도 흥행 수익을 반으로 딱 자르는 것이 어려워서, 북미 배급은 20세기 폭스사, 해외 배급은 워너 브라더스사가 맡았는데. 1975년 흥행 1위로 해서 두 영화사 모두 엄청난 흥행수익을 벌어들였다.

아카데미상 3개 부분을 비롯해 그해의 영화상을 쓸어 모았다. 물론 1975년은 대부 2의 해였지만, 대부 2와 맞붙었어서 영화상을 따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다.

성춘향과 춘향전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타워링이 떠오르는 화재 재난 영화가 2000년에 보름 간격으로 개봉해서 맞붙은 경우가 있었다. 사이렌과 리베라 메였는데. 먼저 개봉한 사이렌이 너무 망해서 리베라 메 흥행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할 정도였지만, 리베라 메는 꽤 준수한 흥행 성적을 냈다.

영화 타워링을 이야기하자면 타워(2012)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진짜 뻔뻔하게 타워링을 베낀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심지어 타워링의 스티브 맥퀸과 폴 뉴먼처럼 빌딩 관리를 맡은 김상경 배우와 소방관인 설경구 배우의 더블 주인공 체계부터 물탱크를 터트린다는 해결 방안까지 타워링 리메이크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배경이 크리스마스인 것은 대연각 호텔 화재에서 따온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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