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일제문소 Oct 20. 2024

핵개인의 시대, 알겠는데

사람좋아핑은 어떻게 하라고

나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큰 즐거움을 느낀다. 가끔씩 혼자 일하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나에게 '그래 이 맛이야!' 하는 기쁨을 주는 건 그래도 좋은 팀원들과 함께 일할 때다. 잠깐 프리랜서로 일해본 적이 있는데 너무 심심해서 도저히 못하겠다 싶어 제 발로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 시간도 훨씬 여유롭고 간섭하는 사람도 적고 일하는 시간 대비 수입도 좋았는데 내가 하는 일 포함 쓸데없는 얘기를 할 사람이 없는 것이 제일 괴로웠다. 내 업무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보다는 "야, 점심 뭐 먹을래?", "사카구치 켄타로 너무 잘생기지 않았냐." "나 어제 29에서 이거 샀어."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눌 사람이 없으니까 이게 사람 사는 건지, 내가 무슨 망부석인 건지.


여기서 오해를 조금 풀고 가자면 나는 맛집을 비교적 많이 알고 있고, 미남에 대한 얘기를 나눌 친구도 많다. 혼자 쇼핑도 매우 잘한다. 단순히 나의 외로움과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사회 초년생 때처럼 완전히 소속감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물론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도 있지만 소속감보다는 일을 포함해서 같은 것을 보며 생각을 나누고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가는 그 자체를 좀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내놓게 된다. 뭐라도 하나 보탬이 되는 느낌이 좋으니까. 그리고 결과물도 좋다? 그때부터는 도파민 그 자체. 이들과 함께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짜릿함이 있다.


기존의 권위들이 쪼개지는 맥락에서 송길영 작가가 주장하는 핵개인의 시대에는 찬성하고 동의하는 입장이다. 앞에서 내내 심심하고 같이 하는 게 좋고 이러다가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스스로 개인주의자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랜 학습과 나 특유의 찌질함으로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 온갖 굴레 속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비교적 우리보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조금 더 짙은 나라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껍데기는 한국 사람인데 내용물은 유럽인(?)이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내 사주의 고정 레퍼토리는 외국 가서 살아라, 첫 회사로 미국계 회사에 들어갔을 때 너무 잘 맞아서 나는 타고난 직장인인 줄 알았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개인을 존중하고, 개인의 역량이 더 발휘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건 좋다. 그런데 조직의 형태가 아니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서 일하는 방식도 있으면 좋겠는데, 어떤 모습일지 영 떠오르질 않는다(아, 책에 혹시 답이 나오려나? 유튜브만 봐서…^^).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도모'해야 하는 일들은 파편화된 상태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몇 명'이 중요한 게 아니고 오랜 시간을 함께한 호흡에서 나오는  퍼포먼스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다. 단순히 같은 공간에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야 착착착착 맞아가는 일들이 있고, 나는 그 시간의 힘을 꽤 믿는 편인데 이게 그때그때 헤쳐 모여의 형태로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 산업혁명 때부터 이어져온 지금 같은 조직의 형태는 낡았고,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에 그리 적합하지 않은 모델인 것은 잘 알겠다. 그리고 뛰어난 개인이 조직의 일부가 되어 가려지는 것보다 스스로를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도 좋다.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표현도 '유튜브 놈들, 얼마나 더 팔아먹을라고' 하고 째려봤지만 어떤 의미인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고유한 것을 가진 사람이 결국 살아남겠지. 종교나 권력처럼 많은 사람들이 애써서 하나로 모은 것들이 이제 그 위상을 잃고 각자의 신망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될 것 같다. 다 알겠는데, 그럼 나처럼 사람좋아핑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점점 모든 것이 파편화될수록 부유하는 인간에게는 '진짜 손길'과 연대감이 중요해질 거다. 오직 사람이 사람에게만 건넬 수 있는 온기가 더 귀해질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걸 제일 잘하는데. 물론 이번 주만 출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온기를 전할 수는 있지만 함께 쌓아 올리는 시간의 힘은 뭘로 대체할 수 있을까. 회식을 자주 해서가 아니고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살피고 겪어가며 보내는 시간은 이제 별로 의미가 없어지는 걸까. 사실 그저 일을 일로 대하는 사람들은 이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일이 곧 삶인 사람이라 이런 변화들이 그냥 레진으로 때울 수 있는 충치가 아닌, 저 뿌리 깊은 신경을 건드리는 것처럼 찌릿찌릿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사실 안봄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