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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Dec 08. 2024

12.3 계엄 후 첫 윤석열 탄핵 시위에 다녀오며

정치적 무관심을 방패 삼는 사람들에게

12월 3일 계엄 선포 후 첫 주말,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모인 12월 7일 탄핵 시위에 다녀왔다. 2시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했는데 공식적인 시작 시간인 3시보다 이른데도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국회 앞에 모여있었다. 탄핵 집회는 별도의 집회 장소가 있었지만 며칠 전의 계엄 상황이 또 벌어질까 걱정되어 나는 국회 앞에 앉아있던 몇십 명의 사람들에 합류해 자리를 잡았다.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다. 평생 집회에 가본 경험이란 박근혜 탄핵 시위가 유일했고 두세 번 정도 짧게 참여했을 뿐이었다. 박근혜 탄핵 집회와 이번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건 꽤 다양한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한다는 것.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고 강아지를 안고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었다. 시위나 집회를 상상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풍경이다. 길거리에서 매일 보던 사람들이 한날 한 시에 같은 의견을 가지고 모였을 뿐이다. 가기 전에는 익숙지 않은 집회 참여라는 상황이 부담스럽지만 가보면 언제나 그 일상성에 놀라고 뿌듯해지기까지 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매일 투쟁을 하는 이들도 물론 대단하지만 평범한 평일을 보낸 뒤 맞이한 추운 토요일,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여기에 나와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생각보다 주변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 정도 일이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정치 고관여자는 아니다. 뉴스를 매일 챙겨보지도 않고 정치인의 행보를 계속 지켜보지도 않는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고양이가 차지하고 있고 가끔 포털 메인에 속보가 올라오면 헤드라인을 보고 ’아 저런 일이 있구나 ‘ 아는 정도다. 투표를 해야 할 때만 간신히 후보자들의 행적을 벼락치기로 공부한다. 즉 평소에는 나 역시 정치 무관심자에 가깝다. 그래서 더더욱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무관심은 당당할 일이 아니다. 평상시 정치 이슈를 상세히 파헤쳐 알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해 나는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정치 뉴스를 보기에는 일상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핑계라는 것도 안다. 매일 뉴스를 보고 분노하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내가 빚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무관심하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꾸준히 정치인을 지켜보고 감시하고 화를 내는 이들 덕분임을 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모든 이들은, 지금까지 눈에 불을 켜고 사회를 지켜본 이들에게 부채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일상은 지금까지 싸워온 모든 이들의 덕분이다. 자유 국가에 살고 있는 것은 민주화 운동에서 싸운 모든 이들 덕분이고, 여성도 투표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참정권 운동 덕분이다. 근로시간과 근로환경의 기준이 생긴 것은 여성 봉제 노동자의 투쟁 덕분이고, 주 5일로 일하며 토요일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노조의 노력 덕분이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허락해 준 것이 아니고 모두 싸움을 통해 얻어낸 것들이다. 그 모든 것을 누리면서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당하게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2시부터 표결 불성립을 발표한 9시 반까지, 하루종일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히 엄청나게 힘들었다. 이번 겨울이 춥지 않다고 난리였는데 하루종일 바깥에 있어보니 겨울은 겨울이더라. 집회 해산 후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로 집에 간신히 도착해서 여전히 쇼핑몰과 도쿄 여행으로 가득한 주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는데 분노가 치솟았다. 화낼 대상은 친구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같이 싸워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들의 무관심함이 그날 국회를 떠난 정치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왜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구는지, 대체 언제 화를 낼 것인지, 자신들의 지갑에서 직접 돈을 빼앗아 가야지만 관심을 가질 생각인지 궁금했다. 나는 오늘 무너진 댐을 막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우리 집에 당도하지 않았다고 태풍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화가 났다.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고작 하루 집회에 참여한 내가 이런 기분이 드는데 지금까지 선두에서 싸워온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민주화 운동에서 고생했던 이들은 문을 걸어 잠근 집들을 보며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파업의 주최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이 불편하다며 파업을 중단하라고 불평하는 것을 어떻게 견뎠을까. 분노보다 더 자주 느껴야 했을 실망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묻고 싶었다.


집회는 탄핵이 선포되거나 대통령이 하야를 결정하는 날까지 아마 계속될 것이다. 나는 이번 집회가 끝난 후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덜덜 떨며 집에 돌아오면서 사실 '다음 주에는 안 나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몸을 녹이고 푹 자고 일어나서는 다음 주의 집회에 들고 갈 응원봉을 검색하고 있더라. 색색깔의 LED 응원봉이 이번 집회의 진정한 하이라이트였다. K팝에 맞춰 리드미컬한 구호를 다 같이 외치며 젊은 여성들이 흔드는 응원봉은 '저출생의 해결책', '소비를 이끄는 MZ' 등 표상적으로 표현되던 2030 세대가 스스로의 언어로 자신의 힘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정책의 대상, 이해해야 하는 현상이 아니라 유권자였다. '국회의원이 도망가고 있대요!' 하며 해맑게 깃발과 응원봉을 흔들고 국회를 봉쇄하러 달려가는 여대생들이 지금까지 SNS에서 정치 뉴스를 '관심 없음' 표시하며 기피하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의료보험과 각종 복지 혜택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그 혜택을 줄이는 데에 일조하는 보수당을 60% 이상이 지지하는 60, 70대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여전히 그들에게 묻고 싶다. 대체 무엇이 당신들의 표심을 이끌고 있는지. 동시에 나는 지금까지의 나를 포함해 정치를 외면했던 젊은 층에게도 묻고 싶다. 우리 모두 부끄럽지 않은지. 모르는 것보다 외면하는 것이 더 나쁘지 않은지. 유튜브에서 최신 뉴스를 검색하고 그 안에서 진실을 걸러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우리가, '무관심'을 방패 삼아 너무 많은 것을 방관하고 있지 않은지. 나도 몇 년 동안 함께 눈 감았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은 눈을 떠야 하는 순간이 아닌지.


45년만에 계엄이 선포되었다. 한참 전 수능 공부할 때 역사 과목에서나 들었던 바로 그 계엄이다. 그런 건 옛날 얘기라고 생각했던 우리를,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헌법과 국회가 지켰다. 


지금껏 무관심했던 우리의 주변 사람들이 투표하고 지켜낸 그 헌법과 국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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