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준비 끝에서 마주한 카르마
오래전 처음으로 직장에서 빌런을 만났을 때 생각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나의 권력으로 저 사람이 업계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고 싶다'
누군가와 회사에서 대판 싸운 날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저 인간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려서 다른 회사에 못 들어가게 해야지.'
하지만 이런 나의 의지는 언제나 금방 꺾였고, 분노에 가득 차 외우고 다니던 빌런의 이름과 출생 연도(00년생 김땡땡 잊지 않겠다...!)는 금세 잊혔다. 누군가를 업계에서 떠나게 만들 정도의 권력 같은 건 전혀 얻지 못했기도 하고.
가끔 전화로 그 이름을 다시 듣기도 한다. 한 회사에 오래, 특히 팀장직에 있다 보면 레퍼런스 콜을 생각보다 자주 받게 된다. 거래처가 넌지시, 또는 동료가 다른 회사의 지인에게 부탁을 받아서 '이 사람 어땠어?' 묻곤 한다. 기억이 바로 나는 사람도 있고 그게 누구였더라 한참을 더듬어야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되도록 솔직히 의견을 전달하는 입장이었다. 만약 그가 아쉬운 결과를 보여줬던 사람이라면 너무 직설적이지는 않게 사실을 말했다. 부정적인 얘기도 정제해서 어느 정도 전달했다. 솔직함이 수고를 감수한 채용 권한자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대표님과 대화하다가 내가 '김땡땡에 대한 레퍼런스 콜을 받아서 이렇게 말해줬다'는 얘기를 했더니 대표님이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굳이 나쁜 얘기는 할 필요 없어. 난 그런 연락받았을 때 칭찬하기 애매한 사람이면 노코멘트를 한단다. 그럼 대충 알아듣거나, 또는 알아서 해석하더라고."
나는 어리둥절해서 왜요??라고 물어봤는데, 어깨를 으쓱하고는 '굳이?'라고 대답하셨던 것 같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나는 그 후로 혼란한 기분이 들었다. 왜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김땡땡에 대해 없었던 일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사실과 다르게 칭찬만 한다면 그것도 거짓말 아닌가? 아는 사실을 굳이 모른다고 해야 하는 이유가 뭐람?
이번에 이직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전문적인 레퍼런스 체크를 받는 입장이 되어보면서 나는 카르마라는 것을 살짝 곁눈질로 훔쳐본 기분이 들었다. 전화로 묻는 정도가 아니라 레퍼런스 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내가 지정한 사람 몇 명, 그리고 내가 모르는 비지정 인원 몇 명이 나에 대해 의견을 적어주면 그걸 가지고 업체가 보고서를 만든다고 했다. 그 보고서, 해킹을 해서라도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전문적인 레퍼런스 체크의 과정은 "그 사람 어때요?", "일 잘해요" 수준이 아니었다. '스펙터'라는 업체인데 이미 네이버, 블라인드에 후기와 악평이 자자했다. 길게는 20분 정도를 투자해야 하는 질문 항목들이 있고, 50자 내외로 써야 하는 주관식도 몇 개 있다. 복사, 붙여 넣기 기능도 막아두어서 그 사이트에 직접 기입을 해야 하기에 챗GPT에게 써달라고 할 수도 없다. 아마 지원자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직접 작성한 뒤 옮기기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지원한 기업은 '의례적인 절차'라고 설명했지만 레퍼런스 체크에서 실제로 떨어졌다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이 과정 때문에 최종 면접까지 다 붙은 상태에서 지원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쉽지 않은 과정임이 분명했다.
평판 작성을 부탁할 사람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름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보게 되기도 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도 친하다 한들 내가 했던 업무를 모르면 써줄 수 없다. 게다가 내가 이직 중임을 밝혀야 부탁을 할 수 있는데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는 아직 퇴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여서 지금의 동료들은 첫 번째로 배제했다. 전 직장은 이미 퇴사한 지 2년이 넘었고 첫 회사의 상사는 무려 13년 전에 함께 일했다. 이들 중 누군가에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써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이다.
부탁할 사람은 사실 머릿속에 바로 떠올랐다. 나를 잘 알고, 지금도 친하고, 나의 좋은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아마 그들은 내 단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친하다. 레퍼런스 체크 항목에는 지원자의 개선점을 적으라는 내용도 있고 만약 모든 항목에 100점 만점의 완벽한 사람인 것처럼 답변하면 '편향된 답변은 지원자에게 불리하다'는 안내 문구까지 나온다. 내가 선택한 사람들은 설령 좋은 말만 써 주지 않더라도 나의 좋은 점과 필요한 개선점을 잘 골라 줄 거라고 생각했다. 신뢰하는 사람들이었다.
너무나 귀찮은 일임을 알기에 굽신굽신 부탁했는데 그들은 흔쾌히 응해주었고, 요청한 지 하루 만에 3명의 작성 요청자 모두 평판 작성을 완료했다는 알림을 받았다. 안내 메일에 '작성자가 마감을 꼭 지키도록 해라'라고 쓰여있는 게 무색하게 이들은 나의 요청 직후 모든 일을 제치고 바로 작성해 줬다. 노심초사 언제쯤 완전한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이직자의 마음에는 1분 1초가 길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벌써?'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빨랐다. 일단 그것부터도 너무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마지막에 작성하는 응원의 메시지, 그리고 개선점은 지원자에게도 공개된다. 파이팅! 정도의 문구가 적혀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열었는데 그만 눈물이 빵 터져버렸다. 거기엔 그들이 응원하는 내가 있었다. 그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빛이 났던 나, 생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나였다. 가끔 일을 필요 이상으로 혼자 짊어지는 것을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시간에 맞서 원래의 총명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선을 빙자한 칭찬 겸 응원이 한데 모여 직장에서 가장 좋은 버전의 내가 거기 있었다. 물살에 깎이고 갈리며 조금씩 잃어버리기도 했던 내 좋은 점들이 체에 걸러진 것처럼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나조차 잊었던 것들이.
이젠 대표님의 '굳이?'에 들어있는 속 뜻을 알 것 같다. 굳이 힘을 들여 누군가의 좋은 점을 지울 필요가 있나. 그 회사는 그 친구를 마음에 들어 해서 전화로 물어보기까지 했을 텐데. 나에게는 빛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다른 곳에서는 반짝거릴 수도 있지. 좋은 얘기를 해줄 것이 아니라면 굳이 빛을 가리지는 말자. 그런 뜻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최종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3명에게 받은 마지막 메시지들을 잘 갈무리해서 저장해 두었다. 빨리 붙었으면 좋겠다, 하고 초조하고 성급해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메시지를 다시 본다. 20년, 30년 차가 되어도 나의 빛나는 부분들은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다른 사람이 흘리고 다니는 좋은 점도 가끔 주워줄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더 좋겠다.
체로 잘 받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