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팀 입사 후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단언 '야마'다. 족히 100번은 들었을 거다.
'야마(やま)'는 일본어고, '산(山)'이라는 뜻이다.
누군가 화가 잔뜩 났을 때 '야마 돈다'라고 말하는 건 들어봤어도, 글을 보고 야마가 뭐냐고 묻는 건 처음 들어봤다. 사실 그동안 문맥상, 정황상 야마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또 간혹 써 왔지, 산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건 이번에 검색해 보고 처음 알았다. 한국에서는 야마가 '머리'나 '꼭지'로 비유되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오케이, 그럼 글에서 야마가 뭐냐, 글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 주제이자 글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다. 보도자료를 쓸 때도 가장 먼저 잡아두고 시작하고, 모니터링을 하다 우리 기업 관련 기사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야마다.
야마가 흐릿하면 길을 잃는다. 야마가 뚜렷하면 분량과 관계없이 술술 읽히는 글이 완성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야마 잡는 게 어렵다. 그래서 글쓰기 자체가 어렵게 느껴졌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어려움이었다. 학창 시절 글쓰기 우수상도 꽤 받았었고, 일하면서 온드미디어 채널 업로드용 글뿐 아니라, 언론 매체 기고도 여러 번 제안받아서 해봤을 만큼 일상적이고, 재밌게 여겨지는 게 글쓰기였다. 내 생각을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게 쉬웠던 나였다.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레퍼런스 삼아 여러 기업의 뉴스룸을 살펴봤다. 보도자료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었다. 정보 전달 중심의 깔끔 담백형, 성과 강조 중심의 위풍당당형… 우리 기업의 이야기를 보도자료에 담아내는 만큼 정보 전달도, 성과 강조도 홍보팀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한 일이 아닌 것에 대해 보도자료를 쓸 때는 한 명의 기자가 되어 열성적으로 취재에 나서게 됐다. 글감을 풍부하게 모으고, 고객이 관심을 가질만한, 고객에게 필요한 내용 순으로 정리해 야마를 잡는다.
보도자료를 기사화해 줄 기자가 흥미를 느낄만한 포인트도 담겨있어야 한다. 내가 기자여도 쏟아지는 보도자료 중 휙 읽었을 때 야마가 휙 잡혀야 기사화할 마음이 생길 것 같다. 글감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야마를 잡고 보도자료를 잘 써내는 게 능력 있는 홍보팀의 일이겠지만, 취재를 잘해서 글감을 많이 모을수록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방향성이 여러 갈래가 생겨 고민스럽지만, 더 재미있다. 이왕이면 쓰는 이, 중간 유통자, 보는 이 모두가 즐거우면 좋지 않겠는가. (물론 보는 이에게 신뢰를 주고 긍정적 인상을 남기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도 야마 잡기, 보도자료 쓰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리 회사는 보도자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중간 논의와 컨펌 과정도 꽤 길고 복잡하다. 그래도 작성자가 야마를 잘 잡으면 과정이 많이 간소화되기에 시간을 많이 들여 고민하고 여러 방향성으로 초안 작성도 해보고 있다.
예를 들어, CES와 같은 글로벌 무대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고 가정해 보자. 깔끔하게 수상 소식만 전할 것이냐, 수상의 의미까지 담아낼 것이냐 등 어디에 경중을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향의 글이 탄생할 것이다.
- OO기업, CES2025 혁신상 수상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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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기업, CES2025 혁신상 영예...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 선도
글은 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 공식과는 다르다.
'제목은 짧아야 하고, 한 문단은 다섯 줄이 넘어가면 안 된다' 등 정해진 답이나 공식은 없다. 그런데 이왕 시간 내어 쓴 글이 휴지통으로 직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글, 보도자료를 읽었으면 하는 사람이 끝까지 읽을만한, 읽고 싶어 할 만한 글을 써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돌고 돌아 홍보인_돌돌홍 업무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