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ssy | L'isle joyeuse, L. 106
그림은 관람자로 하여금 적극적인 개입을 허용하면서 그 빈 얼굴에 자신의 얼굴 내지는 자신이 보았던, 보고 싶었던 여러 얼굴을 대입하게 한다. 부재하는 얼굴은 구멍이자 여백 같다. 라캉은 인간만이 가면 뒤에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우리는 뒷모습에서 앞모습을, 얼굴 없는 곳에서 얼굴을 본다.
-박영택, '오직, 그림 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
다시 말해 감상자는 화가의 그림이 전달하는 말, 욕구, 생각과 주장을 직접 자신의 귀로 듣는 경험을 통해 본질적 인식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화가가 그려내는 이면은 감상자의 환청─청각적 상상력─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진정한 예술은 인간의 감관을 총체적, 유기적으로 교호하게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159p
현대미술은 형상을 지움으로써 이 세상에서 말할 수 없는 것, 볼 수 없는 것, 보아도 표현하거나 재현하기 어려운 것, 떠올릴 수 없는 것, 그릴 수 없는 것,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증언하고자 했다. 작가는 정의할 수 없고 규명될 수 없으며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을 그리려고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339~340p
저자가 고른 최고의 서양회화 작품 51점이 담긴 책.
정말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역시 '최고'만을 신중히 선별한 그림 감상 책이어서인지
작품 하나하나를 접할 때마다 '획기적인 아름다움'에 눈이 뜨이며
작품이 그려진 그 시대 속으로 생생하게 빠져들어가는 듯했다.
시대 순으로 작품이 나열되어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변화의 추이를 느끼며
더 몰입이 가능했던 것도 같다.
내가 회화를 좋아하는 이유인 '색채'가 주는 풍부한 매혹을
탐닉할 수 있었을뿐더러
감상을 도와주는 저자의 시적 해설 덕분에, 하마터면 놓칠 수도 있었던
아름다움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림 한 점 한 점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모조리 내 안으로 집어삼켰다.
저자의 해설이 없었다면
그림을 통째로 삼켜 체화하는 듯한
이 느낌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놓칠 수 없었던 건 그림뿐만이 아니다.
미적 감수성으로 넘실대는 저자의 언어도 내겐
하나의 회화처럼 다가왔다.
글을 읽을수록
언어는 그림에 섞여들어가고, 그림은 언어에 섞여들어가며
경계는 점점 사라져 갔다.
가시적이면서도 비가시적인, 구별되어 있음에도 구별되지 않은,
사유와 감각을 넘나드는, 실제인 듯하면서도 환상인 듯.
이 책은 내겐 그 자체로 '회화' 감상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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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ussy | L'isle joyeuse, L.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