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Mayer | Belief
왜나하면 진리가 단지 우리와 현실들의 주관적인 관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를 인간들이 '객관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그 관계의 명목상의 본질, 다시 말해 그 관계의 논리적 정의는 무엇인가?
-윌리엄 제임스, '진리란 무엇인가'
우리 실용주의 관점은 진리 관계는 명확히 경험 가능한 관계이며, 따라서 그 관계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묘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진리 관계는 본질적으로 유일하지 않고 불변하지도 않으며 보편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실용주의의 관점이다.
-236~237p
그러나 만약에 현실들이 거기 있다면, 그것들이 먼저 믿어지지 않고 어떻게 알려질 수 있겠는가? 혹은 우리가 먼저 만족스럽게 작용하는 현실들에 대한 생각을 품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그 현실들이 믿어질 수 있겠는가? 실용주의자들은 그런 것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42p
제목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집어 든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를 절대적이고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닌 것으로 보는 저자의 관점은
현재 나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지만
누군가에겐 탐탁지 않은 정의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까.
'진리의 속성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한 것으로 절대불변함이 입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변화할 수 있는 '유연한' 진리라면, 그건 진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지 않겠는가?'
나 역시 한때는 종교의 영향으로 인해 진리란 태초부터 내세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고정된 법칙이라 여겼고,
진리를 의심한다는 건 신을 의심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조금의 의문을 품는 일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다 지금에 이르러 완전히 다른 진리관을 갖게 된 것인데, 비단 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진리관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점에서, 또 각자가 믿는 진리가 일치를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진리는 객관이 아닌 주관의 영역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주관 혹은 주관을 일으키는 생각에 의해,
사람들은 각자 어떠한 개념이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가의 여부에 따라 진리라고 믿고 싶은 것,
아닌 것을 나눌 뿐이다.
이때 그 만족은 오직 현실의 맥락에 의거한 것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가 먼저 만족스럽게 작용하는 현실들에 대한 생각을 품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그 현실들이 믿어질 수 있겠는가?'
와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책은 사람에 따라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다.
내게는 빼든 칼을 다시 넣지 말자는 생각으로 도전하듯 읽은 책이었는데,
저자가 주창한 실용주의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 읽는다면 더 폭넓은 탐구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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