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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May 27. 2024

매달릴 때 필요한 믿음

춤 잘 추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춤 좀 잘 춰봤으면~'하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턱걸이를 척척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턱걸이할 수 있었으면~'하고 말했다. 요즘 아파트 헬스장에서 친구들에게 PT 품앗이를 받고 있는 작은아들이 그저 흘러갔을 내 소원을 냉큼 잡아챈다.

"엄마 매달리기부터 시작해 봐요. 10초, 20초 늘려가다가 1분 정도 매달릴 수 있게 되면 턱걸이를 할 수 있는 근육이 준비된 거야. 그때 턱걸이를 한 개, 두 개씩 늘려가는 거지. 별거 아냐~"

1분? 에이! 고작 1분 그거 못할까 봐~ 1분이란 숫자가 승부욕을 자극한 것일까? 당장 아파트 놀이터 철봉으로 달려갔다. 호기롭게 매달린 나는 20초도 버티지 못하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턱걸이는커녕 10초도 안 돼서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들의 폭소가 놀이터에 메아리치던 그날이 벌써 작년 겨울이다. 아들은 친구들과 틈틈이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좀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근육이 제법 붙었다. 뭐 저리 쉽게 근육이 생긴단 말인가! 역시 성장기 청소년의 근육은 발달속도가 넘사벽이다. 노화가 착실히 진행 중인 아줌마와 차원이 다르다...


"아들, 이리 와서 엄마 매달리기 하는 거 시간 좀 정확하게 재어줘 봐. 이제 1분은 충분히 넘는 것 같아. 한 번 재보자."

치욕의 놀이터 철봉사건 이후 나는 아예 집 안에 철봉을 중고로 들여놓고 틈틈이 매달렸다. 물론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워킹맘인만큼 하루에 한 번 매달리는 걸 까먹는 날도 많았지만 여하튼 대체로 하루 한 번은 매달렸다. 느낌상 분명 내 손목과 어깨근육은 이제 턱걸이를 감당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이작!"

끙... 손목 힘줄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이제 30초 지났어요~"

손가락에 힘이 점점 풀린다. 신기하게 가만히 매달리기만 하는데도 호흡이 가빠온다. 이런 이런.... 왜 큰소리를 쳤을까...

"이제 45초 지났어요~"

1분은 옛날에 지난 것 같은데... 엄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낭떠러지에 매달렸다 생각하고 버텨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엄마 5초 남았어요~!"

이대로 손을 놓을 순 없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손잡이를 움켜쥐었지만 기름이라도 바른 듯 악력이 스르르 풀렸다.

"1분 지났어요!"

휴... 체면은 겨우 지켰군. 나는 툭 떨어지는 땀방울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오~! 1분 19초! 엄마 많이 늘었네요~!?"

분명 이런 근육을 상상하며 구입했었는데... ㅡ,.ㅡ; 



방금 1분 지났다더니~?!! 1분 19초?? 뭐야? 속았다. 아들놈에게 농락당했다. 

"엄마가 그랬잖아요~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한 그릇 더 먹으라고, 그래야 키 큰다고~. 그래서 나도 엄마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처럼 보일 때 쫌 더 버티게 해 주려고 뻥 좀 쳤어요~."

하도 빼빼 말라서 많이 먹고 키 크라고 무심히 했던 소리를 나에게 써먹을 줄이야... 화가 났지만 덕분에 생애 최고 기록을 달성한 순간이었으므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웃었다. 


혼자 연습할 땐 늘 50초 언저리에서 포기하곤 했었다. 언제나 1분이 목표였기에 1분 근처만 가면 그 대단한 숫자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떨어지곤 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1분 19초를 매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내 한계는 내가 정하는 거기까지인 셈이다. 아들 말 대로 더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한 발 더 내디뎌 보는 것. 그것이 근육을 키우는 방법이다.


스스로 한계 짓지 말고 '나'를 믿어주자. 근육은 내가 믿는 만큼 붙는다. 근육뿐이겠는가? 공부도, 업무도, 대회도, 시험도 다 마찬가지 아닐까? 돈에 매달리면 돈이 도망간다. 사람에 매달리면 사기당하기 딱 좋다. 행운에 매달리면 인생이 허망하다. 꾸준히 근육에 매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프리다이빙과 수영도 즐겨야 하고, 글쓰기와 그림책 읽어주기도 오래오래 하고 싶고, 정년까지 도서관 서가정리는 무한반복 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즐기려면 근부자는 기본값이다. 턱걸이 1개라도 성공하는 날이 오면 아들놈에게 치킨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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