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독서가 되는 법]
누구나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이고, 쓸 수 있는 에너지도 한정돼있으며 지갑은 더 유한하다. 세상에는 맛있는 것도 많고, 재미있는 것도 많고, 좋은 것도 많지만 다 할 수 없다. 결국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이 유한한 자원을 쓰며 살기 마련이다. 요즘 내 삶이 어떤가를 객관적으로 보는 방법이 있다. 내 시간, 돈, 에너지를 어디에 제일 많이 쓰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무언가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의 우선순위가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내역서와 다이어리 일정표를 보면 된다. 내가 제일 많은 지출을 하고 있는 대상은 무엇인가? 내 여가시간과 자투리 시간을 가장 많이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우선적으로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교집합이 보여주는 것이 내 삶이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의 독서교육을 위해 좋은 방법이 없는지 질문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되묻는다. 자녀의 시간과 에너지는 어디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나요? 자녀의 무엇에 제일 많은 돈이 쓰이고 있나요? 보통은 의식주 외에 학원비, 등교 외에는 학과공부와 학원숙제가 일 순위로 꼽힌다. 독서를 하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독서를 우선순위 상위에 올려둘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독서를 과감히 외면하기엔 그 찜찜함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꾸 궁금해하며 미련을 둔다. '책 좀 잘 읽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투자대비 효율이 좋은, 한마디로 가성비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제일 쉽게 쪼갤 수 있는 것이 돈이다. 아이의 시간은 24시간밖에 없고, 에너지도 대신 채워줄 수 없지만 돈은 내가 대신 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의 독서를 위해서 첫 번째로 투자하는 것이 돈이다. 독서논술학원에 보내고, 비싼 전집을 들이고, 거실을 전면서가로 리모델링하고, 독서대를 사고, 은은한 조명을 설치하고, 허리에 좋다는 비싼 의자를 준비하는 것들은 확실히 독서생활에 도움이 된다. 적절한 냉난방으로 온습도를 조절하고 성량 좋은 스피커에서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하다 보면 책을 읽히기 위해 필요한 환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물어보고 싶다. 반대로 이 정도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책을 못 읽겠네요?
아이가 언제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대입? 취업성공? 책은 죽는 날까지 평생 읽는 것이다. 책은 읽게 하는 것,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부모의 돈으로 만들어주는 환경이 아이의 일생을 다 커버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동적으로 시작된 투자는 효용한계가 명확하다.
아이들이 능독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적극 투입하는 대상이 있다. 바로 스마트폰. 스마트폰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특별한 환경이 필요한가? 그냥 풀 충전된 스마트폰과 와이파이만 있으면 된다. 푹신한 의자나 시원한 에어컨이 없어도 스마트폰을 열심히 사용한다. 한글도 못 읽는 어린아이들 조차 스마트폰을 잘 사용한다. 스마트폰은 쉽다. 써보니 즐겁다. 그러니 계속 사용한다. 언제? 짬짬이, 틈틈이, 수시로. 왜? 재미있으니까.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손 닿는 곳에 폰이 있으니 심심하면 볼 수 있고, 다양한 업무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니 수시로 사용한다. 사용해 보니 참 효율적이고 유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더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아낌없이 구매하게 된다. 그렇게 스마트폰은 우리 삶에 녹아들었다.
그럼 책은 왜 못 읽는가? 전면책장과 은은한 조명과, 폼나는 전집이 없어서? 책은 스마트폰처럼 직관적이거나 쉽지 않다. 읽는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어려운 기술이다. 종이에 나열된 그림과 글을 눈으로 입력하면서 동시에 앞뒤내용을 기억해 가며 머릿속에서 내가 가진 배경지식과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상상하거나 추론하면서 이미지화해야 앞 뒤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다. 그렇다. 이 기술이 연마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읽는 행위가 재미가 없다. 책이라는 것으로 내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해 본 적이 없고 유용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재미없고 어려운 행위를 반복하는 의지를 내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도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니 사람들은 일단 돈을 먼저 투입한다. 돈을 들여 읽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면서 독서가의 꿈을 키워본다. 그리고 대체로 실패한다. 순서가 틀렸기 때문이다. 독서를 즐기는 삶을 위해서는 돈이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를 먼저 투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