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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Apr 08. 2024

오십 구일. 아프지 않길

채소비빔밥


기름에 볶지 않고 액젓과 고춧가루로 가볍게 무쳐낸 봄당근과 싱싱한 겨울초 잔뜩에

고추장, 들기름 약간을 넣고 열심히 밥을 비빈다.

오늘 고기는 없다.  

대신 볶은 표고버섯이 쫄깃쫄깃 식감부터 향까지 사로잡았다. 반숙으로 부친 달걀 프라이까지 얹어내면 맛있는 한 그릇.


겨우내 딱딱하기만 하던 당근이 칼을 쓱 넣으면 가볍게 잘릴 만큼 연해졌다.

당근이 연해지는 기간 동안 어느새 우리 아가는 32주 차에 접어들었고, 오늘 거울을 보니 손가락 한 마디쯤은 커진 듯 지난주보다 확연히 불룩하다.

임신 초기에는 호르몬의 영향이 더 커서 소화가 잘 안 되었다면, 현재 말기에는 물리적으로 자궁이 위를 누르다 보니 소화가 더디다.


오늘 낮부터 계속되는 소화불량으로ㅡ주말 동안 고열량을 많이 먹기도 했고ㅡ저녁은 식이섬유를 채우려고 했다.

한 그릇 싹 비워서 잘 먹었다 싶었는데,

살짝 익혀 먹었어야 했나, 거의 생채소라 그런지 이마저도 금방 내려가지 않는데 소화제도 못 먹으니 답답할 따름.

아가도 힘든지 배가 딱딱하게 뭉쳤다가 안에서 여기저기를 두드린다.

내가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우울해지면, 임신 기간 중 두세 번 정도로 자주 발생한 건 아니지만, 거의 곧바로 아가에게서 신호가 왔다.

뭉침과 동시에 조금 찌르는 듯한 아픔, 아가도 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단 사실에 미안함 그리고 맘껏 힘들 수도 없는 서러움에 북받치게 된다.

오늘은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인한 배뭉침이라 그런지 찌르게 아픈 증상은 다행히 없다.


내 배를 쓰다듬다가 자는 남편.

나는 눕자니 더 얹히는 것 같아 끙끙대고 쉬이 잠들지 못한다.

바로 어제 안쓰럽고 든든하던 남편인데, 코 골면서 잘 자는 모습 보니 오늘은 괜히 야속한 기분이 든다.

엄마 되기는 하루하루가 어려운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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