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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Apr 01. 2020

낮과 밤이 달라도 맛있다

병아리콩 토마토 스튜

양파는 잘게, 마늘은 단면이 다 보이도록 넓고 얇게, 당근은 먹는 줄 알듯 모를듯하게 작은 큐브 모양.

뜨거운 목욕을 해서 껍질은 벗은 토마토는 충분히 다져, 농축된 토마토 페이스트와 함께 달달 볶는다.

맑은 오일에 담긴 참치인 줄 알고 샀는데 열어보니 토마토소스에 절인 참치캔 반 통도 같이.

전날 만들어 놓은 채소육수를 넣고 보글보글 한 소끔 끓이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콩, 삶은 병아리콩도 아낌없이 넣어 휘이휘이 뒤섞으면 나만의 토마토 스튜가 완성.

버터나 우유, 크림 등 유지방을 넣으면 더 되직하면서 부드럽지만

후추와 고춧가루 조금만 더하면 이미 내 입에 꼭 맞는다.


씹히는 맛이 있는 펜네 파스타를 넣을까, 돌돌 말아먹을 스파게티 면을 넣을까?

아니면 그냥 바게트에 곁들일까.

소리부터 되직한 보. 글. 보. 글 스튜를 보면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일단 샤워부터 하자.

꽤 오래 자르고 다지고 볶았더니 개운해지고 싶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역시 밥이 생각나.

쌀밥 반, 스튜 반을 올려 한 숟가락 집어넣으니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어떤 이는 한번 꽂히면 그 음식 하나만 질리도록 먹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같은 음식을 끼니 연속으로 먹는 것은 물론이고, 여의치 않은 때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재료가 들어간 요리를 하루 세 끼에 넣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 토마토 스튜는 그 공식을 깨고 이튿날 아침 내 상위에 올랐다.

그래도 저녁과는 약간 다르게 아침 메뉴답게 가자, 달걀 톡.

반숙을 만들어준 뒤 완두콩을 흩뿌려주고 식빵은 토스트기에 땡!

에멘탈 치즈도 쓱쓱 갈아서 올려주면 그럴듯한 나만의 브런치 메뉴가 된다.


같은 음식이 같은 그릇에 담겼으나 저녁의 스튜와는 다른 녀석 같다.

간밤 배고픔에 뒤척이지 않게 속 깊이 든든하게 채워 날 재웠다면,

집에만 있더라도 넉넉한 아침햇살을 담았으니 하루를 잘 시작해보게,라고 깨우는 듯하다.

조금 신경을 쓴 음식을 한 수저 한 수저, 천천히 떠먹으면 많은 양이 필요치 않다. 많은 가지 수가 필요치도 않다.

한 그릇에도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마침 어제오늘은 바람이 꽤 차가와서 스튜가 꼭 어울렸다.

그대의 낮과 밤에 어울리는 한 그릇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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