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Cesare Pavese “우리는 하루하루를 기억하지 않는다. 순간을 기억할 뿐이다.” - 세자르 파베스-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잠을 청하는 대신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극 중 러브라인에 있는 두 사람이 치킨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두 사람이 과연 깊은 사이로 발전할지가 달린 중요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어차피 둘은 잘 이루어질 관계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꽁냥꽁냥한 눈빛도, 질투심에 툭 튀어나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티키타카도, 나는 그저 건성으로 들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들 앞에 놓인 치킨의 상태가 몹시 걱정되었다. 마침 샐러드로 대충 때운 마지막 끼니를 떠올리며 배 속에서 심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드라마에 다시 집중했다. 아니, 그들의 치킨에 집중했다.
내가 그토록 치킨을 신경 쓴 건, 극 중 아무도 치킨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대사를 주고받는 내내 맥주만 조금 마실 뿐 치킨은 고사 지내 듯 방치해 두었다. 나는 갓 나온 치킨을 저렇게 놔두었다간 골든 타임을 놓칠 거라며 혀를 찼다. 실제 '썸 타는 사이'라면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이기 위해 일단 먹어보라고 말할 것 같은데, 어째 이번 화는 고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으며, 장면을 구석구석 뜯어 살펴 지적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눈에 띈 건 바로 화면 가장자리에 잠깐 등장하는 다른 테이블. 친구들 여럿이 모여 이것저것 시켜 먹는 그들은 포커스아웃 되어 흐릿하게 비쳤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래, 바로 저런 거지. 치킨은 저렇게 편안하고 즐겁게 먹어야 제 맛이라고, 혼자 입맛을 다시던 나는 문득 S가 생각났다.
S는 나의 오랜 동네 친구였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사는 이웃이어서 코흘리개 시절부터 온갖 어리숙한 꼴을 다 보여준 사이였기에 우리는 부르면 바로 집 앞으로 나오는 소위 즉석 만남을 즐겼다. 그 만남에는 중요한 룰이 있는데 '화장기 없는 민 낯'으로 '최대한 편안한 옷을 입고 나오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화를 나눌 때 '먹을 것을 곁들이기'였다. S는 특히 치킨에 대한 애정이 커서 우리는 동네 치킨 집을 하나씩 찾아 맛을 보았다. 그것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데이터가 쌓였는데 우리만의 '치'슐랭 가이드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굵직한 기록을 달성했다. 2006년 1월, 나는 자그마치 열다섯 마리의 치킨을 먹었다. (이 글을 읽는 분의 표정을 감히 미리 상상하며 다소 기름진 내용에 미리 사과를 전한다.) 그리고 열다섯 마리 모두 S와 먹었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겨울 방학과 나의 생일을 핑계로 한 달 내내 S를 불러내어 잠깐 수다나 떨자고 한 것이 매번 치맥 행이었던 것.
열다섯 번째 치킨을 먹을 때 나는 S에게 오늘도 치킨 먹는 거 괜찮냐고 물었다. S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제의 치킨과 오늘의 치킨은 달라."
S는 나에게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을 현실적으로 납득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S는 진심으로 먹는 일을 즐겼다. 대충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정말 먹는 게 좋아서 눈을 뜨면 일단 먹는 생각부터 시작했다. 이런 S의 행위는 그저 허기에 쫓겨 배를 채우려는 식욕과는 달랐다. 무엇을 먹을지 차근차근 따져 물으며 신중하게 선택하는 과정은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다정함과 지금 이 순간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솔직함을 포함했다. 평소 극도로 내성적이고 자기주장을 내놓길 부담스러워하는 S이지만 먹는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S의 거짓 없는 진솔한 자세 덕분에 나 또한 그 자리를 경건하게 임했고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먹기 위해' 살았다.
그런 S가 인생을 건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사실 열다섯 번의 치맥으로 도장 깨기 할 때 곁을 지켜준 S였지만 진한 우정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지독한 과체중은 그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좋다-하는 다이어트를 모두 시도해 보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S는 운동보다는 식이요법에 초점을 맞춘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특히 목표한 체중 감량에 성공하면 환불을 해주는 방식이 s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 결국 S는 본격적인 식이 조절을 선언했고, 만나면 늘 무언가 배부르게 먹고 헤어졌던 우리는 0칼로리 챌린지를 시작했다.
이번 다이어트는 달랐다. S는 가장 좋아하는 치킨조차 먹지 않았다. 단골 치킨 집을 지나갈 때마다 눈을 질끈 감고 후다닥 뛰어갔다. 나는 그런 S의 뒷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녀석의 의지를 꺾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치킨 집 대신 카페에서 수다를 떨기로 했다. 칼로리가 낮은 차(tea)를 주문하고 창 가 자리에 앉았다. 매일 주고받는 이야기 끝에는 그간 먹지 못한 음식들이 등장했다. 우리는 다이어트 끝나면 당장 먹을 것들을 읊었다. 그중에는 특히 치킨이 많았다. 치킨 브랜드 별로, 양념 별로, 토핑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기억해 냈고 급기야는 무엇이 가장 맛있는지 순위를 매겼다. 그간 먹었던 수백 가지의 치킨을 순식간에 줄 세우던 S는 가풍이 오래된 브랜드의 고전파 매콤 달콤 양념 치킨을 최고로 여겼다. 나는 갓 튀겨 나온 바삭한 후라이드 치킨을 1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가 반복하며 최종 순위를 쉽게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이게 제일 좋아. 아무리 새로운 맛이 나와도 이 조합은 포기 못해."
반반 치킨이어야 하는 까닭은 이랬다. 후라이드 맛만 시키면 양념이 먹고 싶어서 양념 소스만 추가하지만 찍먹은 또 부먹과 달라서 아쉽고, 결국 반반-조합으로 정하게 된다는 것. 그렇기에 반반이야말로 아무것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조바심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고, 누구의 입맛도 소외되어서는 안 되는, 식탁 위 차별에 대한 저항이었다. 우리는 간혹 신 메뉴를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결국 먹던 맛, 아는 그 맛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어서, 다시 이 조합을 선택하고 마는 이른바 '반반 회귀론'에 대해 길게 얘기를 나눴다.
S는 중간 체크 날을 무사히 마치고 기다리던 치팅 데이를 맞이했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메뉴는 바로 양념과 후라이드 반반 치킨.
S는 다이어트가 끝나지 않았으니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겠다며 튀김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 포크질은 마치 쌍쌍바를 가르는 손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내키지 않은 듯 힘만 잔뜩 들어가 있었다. 피눈물 나는 해체 현장을 보던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부탁했다.
"그래도 닭다리한테는 그러지 말자."
"맞아, 다른 것도 아니고 닭다리니까"
몇 번의 정당화 작업 끝에 녀석의 닭다리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미운 포크질을 멈추고 바로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간 S는 이제야 진심으로 온전한 태도로 치킨을 마주하고 있었다. "바로 이 맛이야!"
활기를 찾은 S는 잃어버린 입맛도 찾아 야무지게 먹으며 떠들었다. 그날따라 양념 맛이 더 깊고 튀김옷도 적당하다고 서로 맞장구를 쳤다. 신기하게도 치킨을 먹으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다름 아닌 치킨에 대한 이야기였다. 치킨 맛이 어떻고 특히 어느 지점이 맛있고, 누구는 다리를 좋아하고, 그때 그 치킨은 특히 맛있었고, … 먹는 순간에도 또 먹고 싶은 맛이 이런 걸까. 끝이 보이지 않는 치킨 수다 중에도 우리는 따뜻한 치킨을 손에 놓지 않았다.
치킨으로 더듬은 기억 속에는 나와 S가 있고 친구들이 있고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눈앞에는 치킨이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아마도 다음 치킨을 만나는 날, 수많은 기억들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느슨한 표정으로 느긋한 저녁을 보내고 싶은 날이면 반반 치킨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잔뜩 풀어놓으며 가장 날 것의 기쁨을 누린다. 그것이 매번 똑같고 유치한 대화일지라도, 튀김부스러기를 이곳저곳에 묻히고 떨어뜨리며 온 세상을 기름지게 할지라도, 치킨 한 마리로 새긴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0칼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