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란 Nov 17. 2023

학생, 왕돈까스 먹어

초능력은 없지만, 우린 아직 젊기에

드라마 무빙의 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 프랭크가 봉석에게 던진 말.

"학생, 왕돈까스 먹어."


목숨을 걸고 소중한 것을 지키는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숨 막히는 액션신을 제쳐 두고 프랭크가 듬성듬성 썰어 한 조각을 입에 넣는 모습에 머물렀다. 아마도 작가는 장면 속 킬러와 목표물이 나누는 몇 마디의 대사로 청자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초능력자도, 끝까지 표적을 쫓는 킬러도, 그들의 팽팽한 대화도 아닌, 허름한 식당의 유일한 메뉴인 왕돈까스에 푹 빠졌다. 물론 훌륭한 연기와 연출로 충분히 몰입하여 드라마를 정주행 한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돈까스, 그 거대한 존재는 드라마 밖으로 흘러나와 나만 알고 있는 더 많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마는데.  




바야흐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 어느 가을날.


내가 다닌 여자 중학교 3학년 교실들은 가을맞이 치장에 한창이었다. 나는 학급 환경 미화 활동을 맡아 친구들과 교실을 꾸미고 있었다. 가을인데 허수아비를 만들까. 아니면 낙엽을 붙일까. 수업은 한참 전에 끝났지만 교실을 새롭게 바꿀 생각에 들뜬 우리들은 무작정 예쁜 것들을 찾겠다고 교문을 나섰다. 예쁜 것들을 많이 파는 가게를 알고 있다는 친구는 나와 나머지 녀석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있잖아, 일단 머리부터 빗고 머리핀도 하나씩 꽂아."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거울을 보며 헝클어진 머리를 고쳐 빗었다. 환경 미화에 필요한 걸 구하러 가는 데 옷매무새를 다시 살펴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친구의 단호한 어조에 나는 그래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교문을 나서 큰길로 나온 우리는 주택가로 가는 길 대신 다른 길로 들어섰다. 오 층높이 남짓한 건물들을 몇 개 지나니 제법 사람이 북적이는 지하철 역이 나왔고, 나와 친구들은 특히 사람들 소리가 많이 나는 곳으로 꺾었다. 그 순간 포장마차와 간판들, 그리고 수많은 행인들로 가득한 큰 골목이 나왔다.

"이제 이 거리를 쭉 걸어가는 거야. 허리 펴고 걷되 옆사람 손 놓지 말기."

손을 왜 잡고 걸어야 하지?-라고 생각한 순간, 온갖 낯선 것들이 내 주변을 압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같은 방향을 걷는 사람들, 반대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 뒤섞여 우리는 손을 겨우 잡고 골목 양끝을 가득 채워 걸었다. 나는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상점에 진열된 옷과 현대식 미용실, 각종 간식을 파는 식당들을 놓칠까 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도 혹시라도 길을 잃을 까봐 친구 녀석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나는 혼자 중얼거리다 물었다.

"여기가 혹시 명동거리야?"

친구는 내 머리핀이 잘 고정되어 있는 걸 확인하며 대답했다.

"명동 보다 더 멋진 곳이지."



그곳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와 같은 재단인 대학교를 기점으로 지하철 역까지 뻗어 형성된 번화가였다. 나는 집 앞 놀이터나 친구 집에서 노는 게 일상이었고 늘 다니던 길 외에는 가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걸어서 고작 10분만 걸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간혹 교생 선생님이 오시면 이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소개를 했었다. 예쁘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친절했던 교생 선생님이 이 거리를 걸었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포장마차마다 가득한 먹거리를 향해 코를 들이밀며 킁킁거리면서도 자연스럽게 예쁜 언니들에게 시선이 갔다. 그들은 두꺼운 책이나 종이를 넣고 다니는 플라스틱 가방(이것을 파일이라고 부른다는 걸 먼 훗날 알게 됨)을 품에 안은 채 바쁘게 걷고 있었다. 교생 선생님이 그랬듯, 그들도 왠지 똑똑하고 목소리도 예쁠 것 같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던 우리는 어느 경양식 집 앞에 멈췄다. 저렴하고 양이 푸짐하다는 왕돈까스 전문 식당이었다. 입소문이 자자한 만큼 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큼지막한 돈까스 사진이 붙어있었다. 어느 대식가가 와도 만족하며 먹을 거라는 확신이 담긴 볼드체 '왕'돈까스는 자신감, 그 자체였다. 게다가 식전 수프와 식후 아이스크림까지 제공한다는 것. 어느 남녀는 서로의 옷깃을 펴주며 잘 차려진 식사 데이트를 기대하고 있었고, 어떤 언니들은 교수님이 어쩌고 수업이 어쩌고 하며 고생한 스스로에게 대접하려는 듯했다. 나는 모두가 열광하는 이 서양식 정찬이 무척 궁금했다. 맛은 물론이고 왠지 다 먹고 나면 세상 모든 것을 삼킨 강자가 될 것만 같은, 푸짐한 접시를 앞에 두고 우아하게 칼질하는 상상을 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지만 가진 건 천 원 지폐 두장뿐이었고 친구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에 우리도 저기서 먹자. 언니들처럼."


왠지 저걸 먹으면 당당한 젊은이가 될 것만 같은 마음에, 언젠가 저기서 꼭 먹겠노라 다짐하며 우리는 돌아섰다. 대신 아쉬운 마음만큼 낙엽을 도시락 주머니에 가득 담았다. 교실 벽에 붙이고 남은 낙엽 하나를 일기장에 끼웠다. 구부러진 잎사귀가 어깨를 펴고 날개를 단 듯 페이지를 가득 채우길 바라며.







다시 가을이 왔다.


사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간지러워 몸을 배배 꼬던 고등학교 3학년에게도 가을은 제법 진지한 계절이었다. 여름방학이 지나면 훅 자란 몸(늘어난 몸)과 일 년의 절반이 끝나 한 뼘 더 어른이 되고 있다는 자가 진단이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게다가 눈치 없는 하늘이 그저 맑고 고와서 교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쏟아질 때마다, 없는 첫사랑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정규수업이 끝난 늦은 오후, 야간 자율학습 대형으로 자리를 잡으면 나는 늘 창가에 앉기를 주저했다. 책을 읽어도 가을 내음이 코로 귀로 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탓에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내용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분주한 교실 밖을 탓하고 싶었으나 10월로 접어들면 학교 내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11월에 있을 수능 시험을 고려한 배려였다. 면학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3학년 교실은 마치 수험생들을 격리 보호하는 특별 구역처럼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부인이 드나들지 않았고 어느 날부터는 교실에 단 두 부류의 사람만 존재했다. 공부를 하는 자와 공부를 방해하지 않는 자. 각자 준비한 고3 수험 공부용 키트를 갖추어 서로의 고요를 지키며 앉았고 저마다의 플레이리스트와 이어폰 줄에 의지한 채 고요를 넘어 고독의 순간에 도킹하고 있었다.


수능을 단 며칠 앞둔 11월은 유독 추웠다.

가을이 끝났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나는 교실에 앉아있어도 스산한 공기를 느꼈다. 겨울용 교복이 부실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대망의 날이 다가오는, 모든 걸 다 바쳐 끝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 두려웠다. 얼마 남지 않은 긴 수험생활의 끝은 나에겐 어떤 대하드라마 보다 묵직한 서사였기에, 가을은 겨울이 오기 전에 끝나는 슬픈 노래처럼 나의 귓가에 맴돌았다.

독서실을 가는 날이었지만 그날은 다른 길로 향했다. 무작정 걷다 보니 여대 앞 거리였다. 나는 종종 필요한 문구를 사러 이 거리를 지나가곤 했지만 이곳을 특별한 목적 없이 나 홀로 걷는 건 오랜만이었다. 근린 지역에 사는 젊은이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다. 전단지를 나눠 주며 호객하는 소리, 길거리 음식을 만드는 소리, 학생들의 대화 소리, 연인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나처럼 소리 없이 걷는 소리까지, 거리를 메운 대낮의 소란이 내겐 조금 어지러웠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바람을 맞아 얼굴이 빨개질 만큼 걸었을 즈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소리에 비로소 목도리처럼 꽁꽁 싸매던 적막을 깨고 나는 토해내듯 나에게 말했다. 좋다고. 살아있는 것 같다고.


나는 골목의 끝에 다다랐다. 이제야 걸음을 멈추고 보니 어느 허름한 식당 앞에 서 있었다. 가게 전면에 왕돈까스 사진이 붙어 있었다. 슬쩍 안을 보니 사람이 꽤 많았다. 왕돈까스의 인기는 여전하구나. 가게 앞에 빼곡하게 모든 메뉴 사진을 붙이고 가격도 써 놓아 행여 가격이 비쌀까 봐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학생에겐 다소 요란해 보이는 가게 풍경이 너무도 친절한 것이었다. 왕돈까스, 3800원. 나는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모의고사 문제집을 산다고 받은 용돈이 남은 덕분이었다.


데미그라스 소스를 듬뿍 부어 촉촉한 왕돈까스는 역시나 큼지막했다. 마치 세계지도를 펼쳐 놓은 듯한, 드넓은 자태는 푸짐하다 못해 진취적이었다. 나는 매번 고민했다. 미리 다 잘라 놓고 먹을지, 먹으면서 자를지. 나는 거대한 녀석을 미리 자르는 게 왠지 아쉬워 잘게 자르다 멈추곤 했다. 결국 배가 부를 걸 알지만 칼질을 시작할 때마다 다 해치우고 또 먹을 수 있을 것처럼, 왕돈까스치곤 작다고 괜히 센 척을 하기도 했다. 옆 테이블에서도 돈까스의 크기를 주제로 의견이 분분해 보였다. 학생들은 음식의 양에 민감하니까. 게다가 이건 왕돈까스가 아닌가. 이걸 다 못 먹다니, 그럴 순 없었다.


수프와 돈까스, 후식으로 나오는 샤베트까지 말끔히 해치운 나는 세계지도만큼 크고 넓은 세상을 삼킨 기분이었다. 집으로 가는 오르막 길에서 한껏 거세진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꽤 강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고. 시험도 결국 왕돈까스를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길가에 수북한 잎더미에서 낙엽 하나를 집었다. 하이파이브를 외치는 듯 위로 빳빳하게 뻗은 잎사귀를 손 위에 두고 다른 손으로 포갰다. 가을에만 할 수 있는 하이파이브였다. 아직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We are young.
So let's set the world on fire.
We can burn brighter than the sun.

있잖아, 우린 젊잖아.
그러니 세상을 불질러 버리자.
우린 저 태양보다 더 밝게 타오를 수 있어.

곡명 <We are young> , 가수 FUN, [영화 리바운드 OST] 중



                    

걷는 순간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그 거리의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