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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Jan 10. 2024

숨 참고 출근 다이브

망설일 시간은 3초면 되는 걸

“문이 열립니다.”


두 줄로 선 사람들이 지체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양팔을 쭉 뻗으면 닿을 1.5미터 남짓의 입구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또 들어갔다. 나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앞사람이 어깨와 어깨 사이를 비집고 들어 가는 동안 나는 계산을 시작했다. 바닥을 가득 매운 발들 사이에 230밀리미터를 어떻게 밀어 넣을지, 오른쪽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왼쪽이 더 나을지, 여자분과 얼굴을 마주 하고 서 있을, 남자분 백팩에 뒤통수를 도킹하는 게 더 편할지, 등등.



힘겹게 문 안쪽으로 발가락까지 밀어 넣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그 순간 닫히는 문에 걸리지 않도록 모두가 숨을 참고 몸을 납작하게 만들어야 했다. 외투 자락과 가방끈이 여러 차례 문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문이 닫히면 휘이잉 소리와 함께 열차는 속도를 냈고 그제야 사람들은 참았던 숨을 잘게 쪼개 천천히 뱉었다. 모름지기 잠수란 그런 것이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공기를 거부한 채 홀로 숨을 지키고 참는 것. 다시 떠오르는 순간에도 숨을 아끼고 아껴 내뱉는 것까지. 출근시간의 잠수는 어떤 종류의 입수보다 섬세해야 한다. 제주 앞바다의 물살보다 요란하게 출렁거리는 특대형 어깨 물결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바다에 부유하는 이끼의 냄새보다 더 날 것 그대로인 미라클 모닝의 민낯들을 마주 해야 한다. 고개를 있는 힘껏 들고 천장을 바라보는 사람, 한 손 겨우 손잡이에 의지한 채 까치발로 공중부양 직전인 사람, 쏟아지는 땀에도 아랑곳 않고 눈을 질끈 감고 순간적인 더위와 싸우는 사람까지. 아무리 자세가 뒤틀리고 몸이 짓눌려도 곧 떠오를 잠수함처럼 있는 힘을 다해 호흡을 꾹 참고 붙들어야 한다. 예외 없이 모두 기괴한 자세로 완전히 구겨진 사람들은 대체 어떤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기에 이 여행에 이토록 간절할까. 그것이 마치 도시의 잠수부들의 숙명인 양.



나 또한 배를 홀쭉하게 만든 채 발에 잔뜩 힘을 주어 서 있은 치 10여분. 같은 자세로 버티는 게 버거워질 때쯤 기쁜 소식이 들렸다. 다음 역은 드디어 환승역. 적어도 내 앞-옆-뒤 누군가 한 명은 내리겠지. 그러면 적어도 두 발 모두 제대로 딛고 직립할 수 있겠지. 문이 열리자 열차에서 내리는 무리와 칸에 남아야 하는 무리가 긴박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와르르 쏟아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답게 서 있는 게 얼마나 큰 역량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제 곧 내 차례군. 이번 목표물은 2호선 외선순환 열차다. 나는 곧 내리기 위해 문 앞에 섰고 미세하게 자세를 바꿨다. 나에게 환승은 또 다른 세부 미션이었다.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려면 급류를 타는 것처럼 재빠르게 다음 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오케이. 나는 수없이 매일 했던 것처럼 멋지게 튕겨나갔다.



환승에 성공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특히 예상했던 시간보다 몇 분 더 일찍 탑승하면 뿌듯함은 최대치가 된다. 지각 따위 허용하지 않는 충실한 직원으로서 이런 기쁨은 마음껏 누려야 한다. 게다가 여긴 2호선이지 않나. 여기서부터 나의 여정은 한강을 향했다. 열차는 잠실을 지나 강남까지, 별 다섯 개짜리 호텔과 수백억, 수천억에 달하는 고급빌딩들이 서 있는, 소위 '억'-소리 나는 화려한 노른자 위 땅을 지상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가장 비싼 도시를 관통하며 저 아파트는 얼마일까, 저 빌딩은 얼마일까 상상하다 현기증을 느꼈다. 노선표를 확인해 보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손가락을 펴고 하나 둘 얼마나 남았나 세다가 강남을 지나 다른 역들도 좀 더 더듬어 보았다. 교대를 지나면 서울대입구역이네. 서울대 다니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여 두꺼운 원서를 껴안고 서울대입구 역에서 문이 열릴 때까지 서 있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단지 그 역에 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러러보는 시선이 짜릿했다는 녀석은 낄낄대며 웃었다. 다음에는 대기업 배지를 달고 강남역에 설 차례라면서. 그 순간 나는 녀석의 고약한 웃음소리가 거북하면서도 2호선 황금라인으로 출근한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했다. 수십 번의 취업문을 두드린 끝에 나는 삼성역 근처의 한 외국계 회사에서 인턴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것이 강남으로 가는 아침 잠수의 시작이었다.


출처: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271769



열차는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잠실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탔다. 대부분 강남 일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겠지. 그들도 나처럼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마지막 황금 땅굴을 지나가는 중일테다. 괜찮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매고 있던 백팩을 강하게 밀고 들어온 사람이 손에 든 휴대폰으로 내 머리를 치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유튜브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괜찮아야 했다. 10년 동안 아침을 이렇게 보냈기에 이 루틴은 마치 구구단을 외우는 일처럼 간단했고 눈 감고도 내릴 문과 오를 계단을 찾을 때마다 드디어 내가 숙련된 도시 생활자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해 왔다. 간혹 동료가 이 망할 놈의 지옥철-이라며 지긋지긋한 출근 좀 그만하고 싶다고 투덜댈 때 ‘난 그래도 지하철로 칼출근’이라고 꿋꿋하게 굴었다. 승진을 두 차례가 앞당긴 선배가 <맥모닝은 출근러에게 주어진 특식>이라며 부지런한 자가 모닝세트와 고성과(High performer)를 얻는다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보란 듯이 9시 전부터 사무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여유를 부렸다. 인정받는 출근러라면 매번 치르는 승하차 전쟁쯤은 영웅전의 서막이었고 어떻게 하든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은 승진으로 가는 예선전이었기에. 모르는 어깨들과 부딪히며 열차 문 밖으로 빠져나가 안전하게 8시 40분까지 삼성역 출구에 도착하는 것, 그것은 내가 출근을 무사히 마쳤다는 신호였다. 그러고 나면 나는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대단할 건 없다. 서울에서 1시간 정도 숨을 참는 건 예삿일이니까.



이번에도 예외 없이 삼성역 9-2번 탑승구로 하차하기 위해 문 앞에 섰다. 이제 계단을 1분 정도 걸어 올라 2분간 지하철역을 빠져나간 뒤 2분 안에 사무실로 들어가면 오늘도 역세권답게 ‘5분 출근 완성’ 예정이었다. 그런데 삼성역 계단을 오르는 중 한 외침을 들렸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이어폰에서 음악이 바뀌는 중에 어렴풋이 들린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잘못 들은 줄 알았으나 개찰구 앞에서 한 여인이 다급하게 누군가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한 여인을 부축하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 개찰구 하나가 갑작스럽게 가로막혔고 잠시 인파의 동선이 엉켜 웅성웅성 소리가 났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서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듯 미묘한 공간이 생겼고 도와주세요-라는 외침은 더욱 선명하게 솟아올랐다. 몇몇 사람들은 주춤거리다가 뒤를 돌아보지만 이내 물살에 떠밀리듯 사라졌다. 사람들은 마치 바위를 피해 헤엄치듯 물고기 떼처럼 재빨리 개찰구를 통과해 나갔다. 무슨 수로 물살을 거스르겠냐는 듯 무기력한 얼굴로.


나 또한 관성에 충실한 피라미처럼 카드를 찍고 나가려는데 하필 축 늘어진 여인의 하얀 손이 보였다. 그 손은 내 손보다 더 하얗고 힘이 없었으며 만져보지 않았음에도 몹시 차가웠다. 서둘러 몸을 돌리는데, 그 순간, 그 여인의 어깨를 힘주어 안은 그녀, 그 목소리의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다. 결국 눈이 마주치고 말았구나. 이어폰 사이로 눈빛이 또박또박 말했다.

"이 분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같이 부축해 주시겠어요?"

이러다 지각하겠는데, 어쩌지? 찰나에 오만가지 생각이 오갈 때 난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차가운 여인의 왼쪽 옆구리를 안았다. 수백 명의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거의 정지한 듯 나아갔고 남성 두 사람이 나와 여인들의 가방을 붙잡았다.

"제가 조심스러워서 가방과 짐을 들어드릴게요." "제가 역무실에 먼저 가서 알릴게요."

완전히 주저앉은 여인에게 말을 붙이며 수백 미터, 어쩌면 수십 미터를 겨우 걸어 여인을 긴 의자에 눕히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허리를 펴고 설 수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가방과 짐을 챙겨 나가며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저분 괜찮아야 할 텐데요." "같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9시 10분. 나는 그날 아침 루틴을 완전히 망쳤다. 평소대로라면 9시에 이미 책상 위에 커피가 놓여 있고 여유롭게 이메일에 답장을 쓰고 있는 중이어야 했다. 모닝커피 대신 냉수 한 잔을 마시며 숨을 골랐다. 살다 살다 지각이라니. 평소보다 늦은 게 민망하여 괜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업무 루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세 평소와 같은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따금 모니터에서 시선이 떨어질 때마다 역무실에 데려다 놓은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의자에 눕혀 놓고 허겁지겁 나올 때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가 바닥에 닿을 듯 말 듯했던 장면과 함께.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까만 머리끈 하나가 손에 잡혔다. 이걸로 머리카락을 대충 묶어 줄 걸. 찝찝한 기분에 냉수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결국 나는 퇴근과 동시에 역무실을 다시 찾았다. 직원에게 아까 그 여자분 어떻게 되었는지 물으니 병원으로 보냈다고.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요즘 다이어트 한다고 굶다가 지하철에서 쓰러지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거면 지하철을 타지 말아야죠."

병원으로 호송 조치 되었다는 말에 나는 긴 말 없이 나와 퇴근 열차를 타러 내려갔다. 어떤 사정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지 알 수 없었음에도 지하철을 타선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계단을 내려가니 승강장은 이미 군중으로 가득했다. 이 시간만 되면 밀물이 되어 만조를 이룬 열차에 사람들은 다시 잠수를 하러 부지런히 뛰어들어갔다. 오전에 겨우 '출근시킨' 몸은 절인 배추처럼 더 묵직하고 축축 늘어졌을 텐데도 열차를 놓칠 수 없는 그들은 더 깊이 더 몽롱한 물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된 듯했다.



“문이 열립니다.”

그들 사이에 서서 나는 다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문 앞에 서는 순간 발이 멈칫하는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쩌면 이 문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거대한 산소통을 매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대신 고삐 없는 말등에 올라탄 인디언이 되고 싶다고*.


나는 열차를 뒤로 한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티켓을 든 것처럼 계단을 두 칸 세 칸 성큼 내리찍으며 열차로 뛰어드는 사람들에 맞서듯, 묵묵히 계단을 걸어 올랐다.  군중의 굴을 빠져나오자마자 역 앞의 편의점에서 커피를 샀다. 그리고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도로 표지판을 보며 북쪽으로 가기로 정하고 그저 직진했다. 명품 브랜드로 도배된 전광판이 불을 밝히는 비싼 거리에서 싸구려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나는 보이는 모든 것들을 눈에 담았다. 웃으며 걷는 사람,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통화 중인 사람, 전단지를 나눠 주는 사람, 나를 보더니 골목으로 달아나버린 고양이까지. 살아가는 중인 수많은 표정들을 만났다. 목적 없는 여정이기에 떠밀리듯 빠르게 걸을 이유가 없었다. 버거운 숨을 참을 이유도, 괜찮은 척 무표정으로 일관할 이유도 없었다. 나의 표정과 속도로 걸으며 나는 가장 비효율적이며 사치스러운 퇴근을 저지르는 중이었다.



걷는 도중에 지하철역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으며 되물었다. 이렇게까지 쓸데없는 짓을 하며 퇴근시간을 날린다고? 그러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한 나는 계속 걸어야 했다. 매번 지루한 잠수를 하면서도 숨을 쉬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그것은 차가운 물결 속에서 쓰러지는 순간 쓸모없는 벌레가 되어 버리는 이 도시에서 끈질기게 불타오르는 방법이었다. 또한 그것은 나에게 줄 수 있는 사치이자 최고의 낭만이었다. 내일 다시 거대한 물속으로 들어간다 할지라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질주해야 했다. 돌연히, 온전히 나의 호흡으로 땅을 되찾으러 온 인디언처럼. 




* <돌연한 출발> 전영애 옮김, 민음사, 156쪽,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에서 인용


사진출처: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271401&code=11131100&sid1=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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