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달력, 그리고 동그라미
12월 31일, 쓰리, 투, 원, 박수. 자정까지 시뻘건 눈으로 버티던 아이들은 00시 00분을 환호로 맞이하고 있을 동안, 나는 불 꺼진 방에 누워 고요한 회고를 진행했다. 사진첩과 낙서들, 다이어리를 넘기며 일 년 동안의 초고들을 더듬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겠다며 부모님을 조르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카운트다운을 하겠노라 TV앞을 지키고 선 아이들에게 일찍 자라고 채근하는 나이가 되었다. 일 년의 회고는 정지하지 못하고 30년을 회고하고 있었고 황급히 모든 불빛을 끄며 눈을 감고서야 잠이 들었다.
결국 해는 떴다. 2024년 첫날, 순도 높은 백색을 갖추며 선명해진 하늘빛깔 흰자 위에 노른자 같은 태양이 흐트러짐 없이 온전히 떠올랐다. 말 그대로 써니싸이드업(Sunny side-up)이다. 개인적으로 완숙과 반숙 사이, 완반숙을 좋아하는 내게 안성맞춤인 색감과 질감을 뽐낸다. 이 맛에 일출을 보는 걸까.
비로소 맞이한 새해 아침. 덤덤한 표정을 짓지만 새것을 만나는 마음은 어쨌든 설렌다. 기록하기를 즐기는 나에게 연말은 다이어리를 사는 기쁨이라면 새해는 빈 공간에 첫 글자를 채워 넣는 두근거림이다. 밤새 쌓인 눈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처럼,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도 타며 눈과 하나가 될 준비가 된 아이처럼, 새해 첫 글자는 거룩한 족적이고 첫 페이지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글자들로 빼곡하다. 글자를 다루기 앞서 나의 목욕재계는 바로 펜 고르기. 그립감과 색깔, 어떤 필체를 담을지 고려하여 선택의 시간을 보낸 결과, 0.45mm의 젤 펜으로 새해 다짐을 적어 놓는 데, 전화가 울린다.
전화벨 소리에도 발신자마다 고유의 떨림이 있다. 발신인을 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엄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용건도 예상한 그대로다. 떡국 한 그릇 먹으라고. 지금 냄비에 떡을 넣을 테니 10분 안에 오라고. 떡이 풀어져 눌어붙기 전에 도착해야만 한다고. 다이어리에 시선을 둔 채 건성으로 대답하며 전화를 끊는다. 생각해 보니 매년 매번 그랬다. 일어날 시간에 맞춰 떡을 미리 불려 놓고 끓이기 전에 전화를 하는 것. 이것이 엄마의 새해 첫 루틴이었다. 그러면 다이어리를 적다 말고 허겁지겁 대충 챙겨 입고 떡국을 먹으러 나서는 것. 이것이 또한 나의 새해 첫 끼니 루틴이었고.
친정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으름장을 늘어놓는다. 엄마, 나 이번엔 진짜 반그릇만 먹을 거 에요. 오늘부터 다이어트 1일이에요. 나는 필사적으로 떡국의 양을 강조한다. 그럴 만하다. 방금 전까지 새해 다짐으로 적은 '다이어트', 이 네 글자 때문이다. 게다가 펜잉크가 채 마르지 않아 다짐의 온도가 손 끝에 남아 있었고, 네 글자 밑에 빨간 줄을 긋고 옆에 느낌표 방망이 두 개를 더 추가할 만큼 진심이었기에. 더군다나 다짐 후 첫날, 첫 끼니가 아닌가. 결연한 표정을 본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식을 시작한다. 주방에 걸린 조리 도구들을 훑어보더니 가장 큰 국자를 집는다. 그러더니 한 대접 당 두 국자 씩 떡국을 담는다. 그것은 마치 나만 아는 0.45mm와 같은, 엄마의 손이 결정한 최상의 계량이다. 각자 취향대로 소고기 고명을 올린 떡국은 사골을 오랫동안 우려내 국물이 걸쭉했다. 후추까지 뿌리니 눈길처럼 하얀 떡국은 제법 고소해 보인다. 모든 게 완벽하다. 단, 내 앞에 놓인 떡국도 국자가 두 번 다녀간 양이었다. 현관부터 강조했던 떡국 양을 엄마가 깜박한 모양이다. (희한하게 엄마는 이 부분만 매년 놓친다.) 그랬다. 두 국자의 떡국. 이것 또한 매년 새해를 대하는 일과였다.
떡국 마시는 소리가 요란하다. 사실 떡국 드링킹 멤버는 지난 주말에 밥을 같이 먹은 멤버와 동일하다. 이토록 평범한 시작이라니.
새해 첫날이라 하면 전날 밤새 달려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고 있거나 보신각 타종행사를 핑계로 시내에서 밤이 늦도록 술 한 잔 하며 얼큰하게 묵은해를 털어야 할 것 같은데. 뭔가 특별한 장소나 사람들 속에서 요란법석을 떨 법도 한데, 매년 그렇듯 우리 가족의 새해 루틴은 요지부동 떡국 먹기다. 그래야 진짜 새해가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가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는 식구들과 복사하여 붙여 놓은 듯 데자뷔 같은 한 끼를 먹으며 그래도 뭐 하나는 달라진 게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집안 구석구석 뜯어본다.
"어? 새로 바꿨네?"
그렇게 겨우 찾아낸 숨은 달라진 그림 찾기는, 바로 거실 벽이었다. 할머니의 루틴이자 아빠가 물려받은 루틴, 그것은 바로 달력 갈아 끼우기였다. 변함없는 식구들은 변함없는 집에 신년을 기념하기 위해 달력으로 설빔을 한다. 어떤 집은 계절마다 가구를 바꾸고 때때로 실내 리모델링을 한다지만 이곳은 강산이 변하는 동안 딱히 변한 게 없었다. 기억을 짜고 짜내어 끄집어낸 변화는, 30여 년 전 입주하고 한 번 도배를 한 게 전부였다. 당시 가장 세련된 디자인이라고 야심 차게 고른 모던 벽지는 '레트로모던'이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모던'은 희미해지고 '레트로'만 남아 있는 벽 한편을 지킨 건 사시사철 자기 자리를 지킨 달력뿐이었다.
내가 어릴 때 젊은 벽에 걸린 것은 주로 OO은행, XX동사무소, OOO상사 등에서 받은 달력이었다. 12월에 받은 달력들 중 글씨가 크고 삽화(혹은 사진)가 밝은 것을 골라 거실 벽에 걸었다. 해가 지난 달력은 구석에 말아서 놔두었다가 색연필과 함께 세배하러 오는 꼬마들에게 건네면 거실 구석은 예술혼이 가득한 화실이 되었다. 아이들이 해 묵은 달력에 엄마 얼굴 아빠 얼굴 모두 그려 놓는 동안 새 달력을 벽에 걸면 '까치까지 설날', 그리고 '우리 우리 설날' 마저 보내고 비로소 진짜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도 그렇게 시작했듯.
부지런한 벽걸이 달력은 이미 동그라미들도 빼곡했다. 병원 가는 날, OO생일, XXX님 잔치… 좋은 날들을 골라 표시해 두고 숫자 주변에 크게 동그라미를 쳐 놓으니 그 숫자만 보였다.
전자 알람을 쓴 뒤로 달력을 거의 보지 않은 데다 달력을 주고받는 일이 줄었다. 최근, 아니 수년간 달력을 새로 걸은 기억은… 없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니 넘기지도, 퇴장하지 못한 채 게으른 반려인을 기다리며 나 홀로 시간을 움켜쥐고 있을 '해묵은 날들'에게 얼마나 미안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기에. 어쩌면 나에게 '특별한 날'이란 아직도 오래된 벽에서만 완성되는 촌스러운 기억들 일지 몰라서, 새 달력을 낡은 눈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동그라미 없는 숫자들을 더듬다 하나 골라 불렀다.
"그러니까 이 날은 아무것도 없는 거지? 오케이, 그럼 이 날로 해야겠네."
냉큼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별까지 그려 넣으니 일제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날이 뭔 날인데? 중요한 날이야? 누가 오나? 나는 대답대신 이렇게 적었다. '같이 밥 먹는 날. 필참' 다들 싱겁다는 표정으로 달력에 호들갑을 떤다며 한 소리 씩 던졌다. 달력에 뭐 그리 호들갑을 떨어 놨냐 하면서도 진지하게 일정을 확인하는 건 여전했다. '먹요일'을 정하는 것. 이 보다 더 중요한 새해 루틴이 또 있을까. 새해가 와도 늘 그렇듯 우리는 함께 먹고 웃어야 하니까. 우리의 동그라미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이미지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