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또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기분이다. 맵을 살펴보니 역시나 한참 더 걸어 들어왔다. 다시 뒤로 돌아 걷는다. 간판이 길의 입구에만 있고 갈라진 어귀에는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탓을 한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간판은 없다. 어디쯤에서 꺾어야 하는지, 아예 발길을 돌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건 어디에도 없다. 나는 그저 맞게 가고 싶을 뿐이다.
바삐 돌아가는 주민센터가 보이고 바로 옆에는 파출소가 있다. 바로 여기 어디일 거다. 하지만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파출소로 향하자 한 경찰관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온몸으로 이 방향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해서 우뚝 멈춰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다. 언덕길을 하나 더 올라 돌아가야 한다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입구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관람의 시작층인 4층으로 간다. 안내데스크에서 안으로 들어서자 조선 시대부터의 한국 경찰의 역사가 펼쳐진다. 사진을 찍고 설명 보드를 다 읽고 전시장을 꼼꼼히 둘러본다.
여러 정보가 담긴 터치스크린을 차례대로 건드리다 보니 포도청 관련 속담과 경찰승진시험 문제가 뜬다.
- ‘목구멍이 포도청’
- ‘사흘 굶으면 포도청 담벼락도 뛰어넘는다’
너와 나 사이의 담벼락을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짝사랑의 시간은 사흘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럼에도 담벼락을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는. 가끔의 네 따뜻한 눈빛과 행동이 내 기다림의 시간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덜 굶었다. 굶게 된다면 과연 주저앉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의심은 있다. 찔끔찔끔의 먹이들이 나를 지지부진하게 사육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호구조사의 목적을 설명하라’
너에 관해서라면 속속들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서? 정답? 승진일까?
포돌이 포순이 탄생의 비밀과 프로필도 알게 된다. 보니 능력이 좋다. 짝사랑 타파에도 소질이 있을 것 같다. 인형을 구해서 곁에 두어야 할까.
3층으로 내려오니 많은 체험 코너가 있다. 기다렸다가 사격 체험도 한다. 어린아이 둘을 데려온 여성분이 11세 이상만 가능하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린다. 홀로 앉아있는 나를 흘긋 바라보고 갔는데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는지 금세 다시 돌아와 내 옆에 앉는다. 그리고 사격실에서 권총을 잡는다. 꽤 실력이 좋다. 다시 돌아온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다.
사격 체험은 진짜 무게의 38 구경 권총으로 원 모양의 스크린 과녁을 맞힌다. 생각보다 꽤 무겁다. 사격 후 어깨 부위에 약간의 통증이 밀려온다.
과녁의 모양이 몸통이었으면 했다. 흔하디 흔한 말로, 난 네 심장을 관통하고 싶으니까.
과학수사 코너에선 시간을 좀 더 보낸다. 내 얼굴 몽타주도 그려본다. 하나도 닮지 않아서 네 얼굴은 시도하지 않는다.
도둑맞은 집에선 지문을 채취한다. 법광원을 벽에 쏘아보니 과학수사의 모토가 나타난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나에게 남아있는 너의 흔적은 기억이다. 흔적이 퇴적물처럼 쌓여간다. 너에게도 나의 흔적은 있을 텐데. 너에게 쌓인 나의 모습은 무얼까 많이 궁금하다. 내 마음은 지문 같아서 너는 그 흔적을 심장 박동 그래프처럼 선명한 무늬로 그려낼 수 있을 지도.
너에게 증거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의심이 간다면 나는 네가 날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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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Catch You Catch Me (by 장숙희, 정여진 - 카드캡터 체리 Op,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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