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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매듭공방

얽히다

by 미하 Dec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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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의 골목길.

한옥마을이 있는 언덕을 오른다.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골목 어귀에서 오른편으로 꺾어 한옥 몇 채를 더 지나니 <기능전수자의 집>, <오래가게>라는 간판이 붙은 아담한 한옥이 보인다.

동림매듭공방이다.


대문을 들어선다. 왼편에 방문이 있고 디딤돌 위에 신발이 한 켤레 가지런히 놓여있다. 들어가도 될까. 디딤돌에 올라 조심스레 문을 연다.

마치 그 안에 네가 있기라도 한 듯이. 너는 어디에나 있다.


"어서 오세요."


따뜻한 환대에 나도 가지런히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선다. 발바닥에 온기가 전해져 온다.


무척 아담한 공간에 매듭 공예품이 잔뜩 전시되어 있다. 내가 오늘의 첫 방문객일까? 궁금증을 갖고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한다. 공방 소속 작가님으로 추측되는 분이 공방을 지키고 계셨는데 손님이 반가웠는지 곁으로 와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덕분에 시간이 풍요롭게 흐른다.

너도 나를 만나면 마냥 반갑기를. 곁으로 와 오래도록 머무르길. 함께 있는 시간이 풍요롭기를.


끈을 이용하여 어떤 형태를 만드는 것을 매듭이라 한다. 끝맺음이나 완성, 연을 잇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매듭은 앞뒤 모양이 같고 중앙에서 시작해 중앙에서 끝난다.

매듭의 형태에 따라 이름도 있고 뜻도 다 다르다. 예를 들면 병아리매듭은 ‘역경을 헤치고 나아간다,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의미가 있어 주로 검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너와 내가 이전 시대를 살았다면, 나는 너에게 여러 가지 매듭 장식을 자주 선물했을 것 같다. 그리고 매번 수줍었겠지.

너와의 인연은 어떤 매듭의 모양을 가지고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앞뒤가 똑같다. 너에게 그리 대한다. 아직은 아닌 너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혹시 시작되었다면 딴 곳으로 새지 않기를. 마음의 중앙을 잘 볼 수 있기를.


간단하게 매듭 공예 체험을 한다. 처음엔 마스크 걸이를 골랐지만, 팔찌가 재미있을 거라는 추천에 마음을 바꾼다.

좋아하는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다. 다만 방법이나 형태를 조금 달리해 볼 뿐이다. 그저 끙끙거리기만 하다 이런 곳들을 다니며 마음을 풀어내는 것처럼.


동글동글한 7개의 도래매듭을 바늘에 꽂아 끈에 끼우고 외도래매듭을 반복하여 팔찌를 만든다.

매듭을 잘못 지으면 줄이 휘고 잘 만들면 줄이 일자로 떨어진다는 설명을 듣는다. 신동이라도 된 듯 잘 만들어보고 싶지만 7개 도래매듭의 색을 고르는 것부터 쉽지 않다. 그 모습을 보시던 작가님이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쉽게 잘 고른다고 하신다. 어른 대부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한다고 한다. 결정장애가 있는 것 같다는. 나도 그 말을 할 참이었는데 공교롭다.


작가님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진행이 된다. 처음에는 이런 걸 사람들이 왜 못 만드나 궁금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이젠 안다고. 어려운 것이란 걸. 위안이 된다. 하지만 위안만 될 뿐 잘 만들진 못하고 있다.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진다. 검수를 받는데 7개의 매듭 중 다섯 번째만 제대로 되었고 나머지는 엉망이다. 손을 봐주시며 작가님이 말씀하신다.


“매듭의 장점은 고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매듭의 단점도 고칠 수 있다는 거예요. 고칠 수 없는 거라면 처음부터 포기할 텐데 말이죠.“


너를 포기하려 했었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무언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 희망과 고문, 좌절과 뜻밖의 기쁨. 이런 것들이 매일 매 순간 반복된다. 연을 잘 잇고 싶다. 매듭을 잘 만들어 보고 싶다.

하지만 나의 연애라는 매듭은 초보자의 그것이다. 그래서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체험 도중에 아이 둘이 있는 한 가족이 들어온다. 아이들이 체험을 하겠다는 강력한 어필을 하는데 매우 신이 나 있다.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환해져 방 분위기가 더 밝아진다.

그 기운이 밖으로도 전해진 걸까. 외국인 커플도 들어와 체험을 기다린다. 상주 작가님은 한 분뿐이라

갑자기 많이 분주해진다. 작디작은 방이 사람들로 꽉 들어차 고요했던 곳이 금방 들뜬 공간으로 변한다. 내가 매듭을 지어 새로운 인연이 이 공방으로 이끌렸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듭 팔찌를 찬다.


체험이 끝나고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본다. 매듭 장식이 걸린 작은 솟대와 새가 앉은 나무에 핀 매듭꽃이 너무 예쁘다.

혼례 때 예물이었다던 수젓집 매듭 장식도 다시 한번 유심히 본다. 전통 매듭 공예의 전승이 잘 이루어졌으면 한다.

오래도록, 그리고 좀 더 가깝게 보고 느끼고 싶다.


방 한편에 매듭끈을 만드는 나무틀이 몇 개 놓여있다. 예전에 본 영상이 떠오른다. 매듭끈을 만드는 과정을 찍은 10분이 안 되는 영상이었다. 매달려있는 여러 개의 실패가 나무틀에 부딪히는 소리만 가득한 채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실을 지어 끈을 만드는 영상이었다. 반복되는 손놀림과 탁탁거리는 소리에 빠져들어 넋을 놓고 보았었다. 공방의 구석에서 그때의 감정이 피어오른다.

나는 멍하니 너를 바라보고 싶다.


벗어놓았던 옷을 챙겨 입고 방문을 나선다.


“안녕히 계세요!”


작가님과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본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작가님이 배웅 인사를 해주신다. 그 말 한마디와 표정에서 의무나 착각이 아닌 진심을 엿본다.

아직 하루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 하루의 매듭을 짓고 있겠지. 어떤 모양의 매듭일까.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너의 매듭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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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머물며, 오늘의 BGM>

끈 (by 에이프릴 세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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