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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01. 2024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가을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창문을 활짝 열었더니


드디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을 열어놓는 계절로 들어왔다. 

집안의 공기는 이제 매일매일 새로움으로 순환하니, 

맑고 투명하게 느껴지는 것만큼 깨끗할 거라고 믿는? 

아무리 미세먼지를 우려하는 이야기가 나와도 

공기가 순환하는 것 자체로 정화작용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창문을 활짝 열게 만드는 것이리. 


밖에서 유입되는 더운 공기가 싫어서 

여름 내내 실내의 공기는 강제로 억류되었었다. 

아마도 지난여름 내내

자유가 필요한 공기는 순환이 필요하다고 소리를 지르고, 

답답하니 제발 흘러가게 도와달라고 외쳤을 수도 있다.


<자유는 소중한 것이니>



나의 의지를 빼앗고 마구 휘두를 대상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마구 휘둘러도 되는 대상도 없다고 생각을 하면 

조금 더 공손하게 

내가 즐기는 모든 대상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게 될까? 

창문 하나를 열었을 뿐인데 

내 생각도 자유롭게 흐르는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대상 대부분이 멈추어있지 않고 흐른다는 점을 발견했다.




”베리에르에서 나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자만심을 지니고 있었던가! 

나는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지 삶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다. “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발췌



스탕달의 문장에서 말하는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란, 

세상과 소통하기보다

자신을 스스로 자기 안에 가두어 놓은 상태를 말하는 의미 할까? 

자신을 제외한 모든 대상을 

낮게 생각하고 무시하거나 경멸하면서 오만방자한 상태? 

그리고 <살고 있다는 것은> 대상에게 흐르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놓았던 벽을 열심히 걷어내는, 

벽을 부수는 행위라고 치면, 맞는 해석일까? 

벽은 고정관념과 같은 것으로 꽤 단단한 상태라 쉽게 부서지지 않는 

성질임을 알고 있다.




고정관념을 없애기 어려운 까닭은, 

그러한 관념으로 이룩한 현재라고 믿어서일 수 있다. 

고정관념은 상대를 알려고 노력하기보다 

먼저 상대를 자신이 만든 폴더 안에 넣어버린다. 

그런 행위가 진정한 소통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리기 어렵고 부서지면 마치 살아낸 이력까지 

모두 와해될 수도 있을 듯한 

두려움이 엄습하므로 

자각에서 언제나 멈추는 듯하다. 



오늘도 어쩌면 자각 상태에서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출 수도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몸이 밖으로 나가면 

정신도 고정관념 하나를 부수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사람들은 아무런 즐거움 없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한 기억조차 지니지 못하고 

모든 일을 행합니다. 범죄자까지도 말이죠. “


-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발췌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에 속한다. 

그 시간에 충실하게 적응하느라 

장소나 분위기를 대충 보는 듯하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편이다. 

별 걸 다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이유는 

시각 훈련을 많이 해야 하는 직종에 

몸을 담아서였을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서로의 기억이 천차만별인 까닭이 

아마도 각자 소중한 게 달라서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시간이 자신에게 소중하지 않아서 

기억에서 사라진 게 아닐까?



창문을 활짝 열었을 뿐인데, 이상하다. 


밖의 공기와 안의 공기가 부딪치는 지점에서

시간을 대출하듯이

가을을 미리 끌어당기면서

나뭇잎의 색을 발갛게 물들인다.


공기의 순환이 생각의 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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