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넛 Sep 02. 2024

히치콕의 The Birds의 영향?

사랑스러웠던 작은 새조차도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새 학기를 위해서 

컴퓨터 스크린에 두 눈을 고정한 채로 

몇 시간이나 PPT 파일을 만들었다. 


화장실에 가는 일도 미룬 채로 몰두했는데, 

전화기가 울려서 <동작 그만!> 외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멈추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전화를 핑계로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쥐가 나는 듯이 갑자기 다리가 불편했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되었던 듯하다>


다리의 느낌이 정상화될 때까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달리다 멈추면 몸의 이상 신호를 느끼는 것인지, 

멀쩡해진 듯해서 걷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종아리가 부어오르는 듯한 기분이 스멀스멀, 



컴퓨터의 열도 식히고 

내 머리의 과부하도 풀 겸해서 뒷산을 걸었다. 

고요를 침범하는 내 발소리에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작은 새들이 포르르 날아간다.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나뭇잎이 일시에 떨어지는 소리같기도 한

새들이 단체로 날아가는 소리는

가을비 같다는 생각도 잠시 스쳤다.




이름 모를 새, 

아주 작고 귀여운 밤색 털과 흰 털이 섞인 그 새를 

언제부터인가 나는 <콩새>라 불렀다. 

콩알보다야 크지만 

다른 새들에 비해 작고 앙증맞아서 붙여준 이름이다. 

우리 집 뒷산에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 새의 서식지가 한국일 수 있다. 


어떤 날은 병아리처럼 

땅바닥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쪼아 먹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먹는 게 아니라 놀이를 즐기는 것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 아이들은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들 세계의 생리를 파악하기 어렵다.



병아리처럼 날지를 못하면 다가가서 만져 볼 수도 있건만, 

그 작은 새는 일 미터 이내에 다른 종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금지법이라도 세워놓은 양 

발소리를 인지하는 재빠르게 높이 날아갔다. 

그들의 생존법이겠지? 

사람을 괴물로 인식할 수도 있고, 

거대한 동물로 인식할 수도 있으니 

부모로부터 사람이 나타나면 무조건 피하라고 

교육을 받은 게 분명했다. 

사람도 공존과 번식을 위해서 규칙을 세우듯이 

새들의 세상에도 질서와 법칙이 존재할 게다.




”그는 날치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날치를 바다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했다. 

그러나 새들은 가엽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언제나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지만 얻는 것이라곤 거의 없는 

조그마하고 연약한 제비갈매기를 특히 가엽게 생각했다. 

새들은 

<우리 인간보다 더 고달픈 삶을 사는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발췌



한 때는 나도 새가 사람보다 작아서 

새를 연약한 존재로 바라보았었는데, 

히치콕의 영화 <The Birds>를 본 이후로 

새가 연약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성질을 지녔음을 의식했다. 

사랑스럽게 새를 바라보던 시선은 사라졌고, 

가끔 새들이 동시에 파드득 소리를 내면서 날면 

새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살피기도 전에 움츠리게 된다. 

아침과 저녁, 새들이 줄지어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면, 

새들도 사람처럼 출퇴근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과 함께, 

잘 훈련된 군인들의 행진 같다는 생각도 했다.




히치콕의 영화를 본 이후 비둘기까지도 무서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만나는 날에는 언제나 실내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셨다. 

그 친구가 야외에서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는 것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비둘기가 주변에 나타나면 신경이 분산되어서 대화에 차질을 빚었고, 

비둘기가 가까이 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사래로 비둘기 쫓아내는 한바탕의 난리 통에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워 처음부터 실내에서 만나는 친구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게 되거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발췌




30분 정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동물이나 새, 곤충과 소통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수의사들은 정말 동물과 소통할 수 있을까? 와 같은 궁금증이 쏟아져 나왔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도 소통이 어려운데, 

종이 다른 동물과는 어떤 언어로 소통하지?

그런 사람들은 정말 존경스러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멈추고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와 자료들을 마저 정리했다. 

별로 한 일이 없는 듯한데 벌써 하루해가 기울었다. 

운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나는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한 게 맞나?

적어도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성격은 아니니 

운이 다가왔을 때 

허둥대거나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둔하지는 않겠지? 


구월, 내가 사랑하는 구월의 시작이다. 

새 학기의 시작이라 마음 역시 새롭다.






작가의 이전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