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다 Dec 04. 2016

내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일기 여덟 ㅣ 2016년 12월 4일

대학 졸업 이후 한 순간의 틈도 없이 이어오던 일을 2주 정도 쉬기로 마음 먹었다.

하던 일과 하려던 일 사이에 주어진 2주의 시간. 

힘들었지만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2주간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친구 결혼식에서부터 온갖 집안일들이 몰아친 시간이었다. 

전국 팔도를 누비며 하지 못했던, 해야 했던 것들을 했다. 

내심 한 달 정도는 쉬어야 했던 것인가 아쉬움이 들만큼, 바빴다. 


그런데 일이 어긋나버렸다. 

하던 일은 끝이 났는데 하려던 일이 시작되지 못한 것이다. 

하려던 일을 시작하기 3일 전, 갑작스럽게 멈춰진 상황.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아무런 기약 없이, 그렇다고 아주 끝나버린 것도 아닌, 

무척이나 애매모호한 상황 속에 나만 남겨진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만원 버스, 만원 전철에 몸을 욱여넣고 출근하기 바빴던 나는 없다. 

습관 때문에 6시에 일어나 잠시 정신을 차린 뒤 다시 서성이다 침대에 몸을 누이면 낮이 되었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 투성이었던 내 일상은, 

어느새 해야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멍텅구리같은 시간이 되었다.

어느 날은 카페를, 또 어느 날은 미술관을 쏘다니다가 

한 이틀은 집 문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않고서 지내기도 했다. 


생경한 경험이다. 

원치 않는 지금의 상황이 싫었다.

12월을 이렇게 맞이하게 될 줄이야. 내 서른 둘의 마지막 한 달의 시작이 이럴 줄이야. 


"언제 이런 시간을 보내겠어. 마음 편히 먹고 그동안 못했던 것도 하고 쉰다고 생각해."


다들 바쁘게 지내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지금 여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싫었다. 

마음이 편해질리 없었다. 


내가 나에게 준 메시지는,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지금 이 시간 속에 있는 나를, 그저 잘 바라보기로 했다. 

괜찮다고 다독여주면서 말이다. 

정말, 괜찮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만 서른 하나, 소원은 하나. 내가 나인 삶을 살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