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_#2015년 10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우리는 어릴 적 혹은 최근까지도 누군가 출제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처지에 있었다. 어떤 답에는 동그라미, 어떤 답에는 빗금이 그어졌고, 그 결과를 수용해야 했다. 하나의 빗금을 지우고 하나의 동그라미를 얻는 이 단순한 게임은 우리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고 결정해왔다.
서른 쯤이 되면 누군가가 그려놓던 동그라미와 빗금들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문제에 각자의 답, 당시의 답을 적어보지만, 그 답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맞고, 틀린 것이 사라진 시절에 들어선 우리는 그래서 늘 두리번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 감독의 열일곱번째장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제목부터 흥미롭다. 두리번거리는 우리들에게 급작스레 동그라미와 빗금을 들고 단언한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고.
이 영화는 121분의 러닝타임을 절반씩 나눠가진 2개의 이야기가 병렬식으로 구성돼 있다. 시간상 ‘앞’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가 있지만, 두 이야기는 어떤 상관관계도 없다. 그런데 등장인물과 배경, 하물며 두 이야기의 초-중반까지의 대사가 같거나 비슷하다. 다른 것은 대화의 호흡과 어조, 눈빛, 그리고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의 사소한 대응 방식.
두 이야기 모두 영화감독 함춘수(이하 함, 정재영粉)와 그림을 그리는 윤희정(이하 윤, 김민희粉)이 만난 만 하루 동안의 일을 담고 있다. 함은 어느 주최의 ‘영화 상영회’에 참석하기 위해 수원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실제 상영회는 그날이 아닌 다음날이었고, 시간이 남아 화성행궁을 찾는다. 행궁 어느 툇마루에 앉아 시간을 때우던 함은 행궁을 찾은 윤을 발견하곤 조심스레 말을 건다. 초면인 남녀가 그렇듯 함과 윤의 물리적, 심리적 간극은 숨 쉬듯 벌어졌다 좁혀지길 반복한다.
처음 만난 두 남녀의 대화는 자리를 옮겨 카페로, 화실로, 일식집 닷찌로까지 이어진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함과 윤은 대여섯 시간 동안 수많은 눈길과 어림짐작을 주고받으며, 제 맘 속 커져가는 뜻 모를 기대감(우리는 이것을 사랑감이라고 부르자)을 느낀다. 여기까지 비슷비슷하게 이어지는 두 이야기는 무엇이 ‘맞고’, ‘틀린지’ 알 수 없는 조그마한 ‘다름들’로 중반 이후 어느 갈림길마냥 서로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굳이 제목과 두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의 특이한 구조를 연결시켜도, 우리는 두 이야기 중 어떤 것이 ‘지금’이고 어떤 것이 ‘그때’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 임의로 두 이야기 중 하나가 ‘지금’이고, 남은 하나를 ‘그때’라고 지칭한다고 한들, 그것의 ‘맞고’, ‘틀림’을 단언하기 어렵다. 마치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매 순간 이어가는 선택의 ‘맞고’, ‘틀림’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두 이야기는 각기 다른 풍경 속에서 그저 존재할 뿐이다. 한바탕 봄꿈처럼 지나가는 시시껄렁한 풍경도 있고, 느닷없는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는 풍경도 있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제목은 ‘지금’과 ‘그때’라는 시간적 개념과 ‘맞고’ ‘틀리다’는 사실 판단이 단단하게 달라붙어 꽤나 거창한 단언처럼 느껴지지만, 띄어쓰기가 제거되면서 문장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고 쓰여있지만, 그렇게 쓰여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지금과 그때, 그 사람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