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다이어리_#2015년 12월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르다'는 뜻의 '이복(異腹)'이란 단어는 홀로 쓰이지 않는다. 대개 형제, 동생, 누나 등의 단어 앞에 붙여 쓴다. 남은 아니되, 온전한 피붙이도 아닌 존재를 구분하는 말. 쉽사리 입밖에 내기 힘든 이복이란 단어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항아리처럼 먹먹하고 또 묵묵하다.
지난 2013년 겨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53) 감독이 또 한번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관객을 찾았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존재의 이야기를 특유의 일상적이고 소박한 배경에 담아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요시다 아키미의 동명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코우다가(家)의 세 자매가 15년 전 헤어진 아버지의 장례식에 갔다가 이복동생 '아사노 스즈(히로세 스즈 粉)'를 만나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렸다.
스즈는 세 자매의 아버지인 코우다가 새로운 여인을 만나 얻은 딸이다. 세 자매의 이모할머니(키키 키린 粉)의 말처럼 스즈는 "세 자매의 가정을 깨트린 여자의 딸"인 셈이다. 이 때문에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처음 만난 스즈와 세 자매는 일면부지의 반쪽짜리 혈연관계를 맞닥뜨리고 적잖이 당황한다.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사건의 틀에 집중하기보다는 카메라를 통해 세 자매와 스즈가 느꼈을만한 감정선을 자연스레 따라가는 쪽을 택한다. 장녀 코우다 사치(아야세 하루카 粉)가 힘겹게 건넨 '함께 살자'는 한 마디로 스즈와 세 자매는 개입할 수 없는 과거를 감내하고, 네 자매로서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나간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선 굵은 사건을 줄기 삼아 스토리를 전개하는 여느 영화의 작법을 따르지 않는다. 바닷마을 가마쿠라(鎌倉)를 떠도는 어느 갈매기 마냥, 카메라는 그들이 사는 집과 골목, 학교, 포구, 단골 식당 등을 찬찬히 훑으며 그곳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의 이야기를 읊조린다.
한편 고레에다 감독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등의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년기 어린아이들의 말과 행동, 눈빛을 빌려 관객에게 정서적인 교감을 시도한다.
가마쿠라에 새로 정착한 스즈는 친구들과 함께 특산물인 잔멸치를 말리고, 벚나무가 흐드러진 언덕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가 하면, 언니들과 모여 앉아 문살에 화지(和紙)를 바른다. 이런 장면들은 우리가 지나온 어떤 시절을 떠올려보게 하는 마술 같은 정서적 기시감을 선사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고레에다 감독의 말을 복기해보면, 이번 영화는 그의 영화적 세계관을 여과 없이 드러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스즈가 학급 친구에게 말한 것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 우리네가 사는 세상이지만,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상처 역시 꿰매고 보듬을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덧)
뛰어난 영상미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서정적인 OST는 다수의 영화, 게임 음악감독으로 활동해온 '칸노 요코(Kanno Yoko)'가 맡았다. 칸노 요코는 카우보이 비밥,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공각기동대와 같은 굵직굵직한 애니메이션은 물론 삼국지, 대항해시대, 라그나로크2 등 게임 음악감독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