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분노, 그리고 劍

괴물의 아이_#2015년 11월

by 토토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나 아닌 타인들과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손쉽게 알릴 수 있고, 의도치 않아도 타인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손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일까. ‘히토리봇치(ひとりぼっち)’. 우리말로 외톨이란 단어가 어느새 우리의 말과 글에서 자취를 감췄다. 쓸쓸하고 적막한 마음은 여전하겠지만, 어쩐지 외톨이란 단어는 요즘 세상과 걸맞지 않다. 혼자인 것, 혼자인 것 같다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숨겨야 할 것만 같은 ‘열린 세상’에서는 외톨이도, 외톨이란 단어도 딛고 설 곳이 없다.



그러던 사이. 우리에겐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ほそだまもる) 감독이 한 외톨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썸머워즈(2009)’, ‘늑대아이-아메와 유키(2012)’ 이후 3년 만이다.


그의 신작 ‘괴물의 아이(2015)’에는 두 개의 세상, 두 명의 외톨이가 등장한다. 엄마를 잃고 시부야의 뒷골목을 전전하던 9살 소년 ‘렌(큐타)’과 인간계와 연결된 괴물계(쥬텐카이)의 기피 대상 1순위 ‘쿠마테츠’다.


쿠마테츠는 괴물계에서 힘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하지만, 제멋대로인 성격 탓에 제자가 한 명도 없다. 쿵푸팬더의 ‘시푸’같은 사부를 만났으면 좋으련만, 쿠마테츠는 홀로 수련하며 외로이 강해진 캐릭터다. 그런 쿠마테츠와 상처 받고 갈 곳 없던 렌이 한솥밥을 먹으며 티격태격 하는 모습이 담긴 영화의 전반부는 영락없이 철부지 아빠와 고집 센 아들의 생활을 연상케 한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두 외톨이의 동거동락 스토리는 호소다 마모루 특유의 언어 감각과 유머 코드로 시종일관 따뜻한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감독은 쿠마테츠의 과거 시절을 철저하게 드러내지 않고, 쿠마테츠의 대사와 행동으로 그의 과거와 현재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도록 여백을 뒀다. 감독의 이와 같은 작법으로 ‘괴물의 아이’는 한 소년의 성장담에 그치지 않고, 두 존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한 걸음 나아간다.


‘괴물의 아이’는 중반 이후 우리들의 마음 한 켠에 자리한 어둠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반부 쿠마테츠가 괴물계에 렌을 데려왔을 때, 한 괴물이 말(“인간은 마음 속 자리한 어둠을 통제하지 못하고 어둠에 잠식되기 일쑤”)한 것처럼, 렌 그리고 또다른 괴물계의 인간(이치로 히코)은 지난 상처의 자리에서 부지불식 간 움을 튼 어둠을 조우한다.



상처와 치유, 마음 속 어둠에 대처하는 방식을 다룬 '괴물의 아이'의 이야기 주제와 구조는 참신한 편이 아니다. 하지만 쿠마테츠를 비롯한 괴물계의 개성있는 캐릭터와 2D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건드리는 뛰어난 영상감이 잘 어우러져 호소다 마모루의 주요 필모그래피로서 손색이 없다.


쿠마테츠는 렌에게 '마음 속의 검(劍)'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음 속에 검이 있지 않느냐고 연거푸 되묻는다. 하늘이 떠나가라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쿠마테츠의 질문이 깊게 남는다. 어둠을 가르는 붉은 검이 이글거린다.



덧)
호소다 마모루의 전작을 살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판타지를 입힌 것이 대부분이다. 마음먹은 대로 시간을 되돌리거나(시간을 달리는 소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아바타의 공간을 만들고(썸머워즈), 늑대로 변신 할 수 있는 인간을 등장(늑대아이-아메와 유키)시킨다. 이는 호소다 마모루의 라이벌 격인 신카이 마코토('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등)와 대비되는 점이다.

keyword
이전 11화出口없는 도시에서 일단 멈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