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口없는 도시에서 일단 멈춤

서울역_#2016년 8월

by 토토

그곳에는 16개의 출구가 있다. 어느 출구로 나가든 건물과 건물 사이 음영이 깊게 벤 골목들은 어느 늙은, 이의 손목처럼 가늘고 메마르다. 혀가 바싹바싹 마른다. 배가 부푼 암캐는 가로누워 숨을 헐떡인다. 절뚝이는 비둘기의 깃털이 열풍에 날아오른다. 빙글빙글 웃는 이가 두 손을 모아 모아 담배를 부탁한다. 고개를 가로 짓는 얼굴들 사이로 또 한 명의 부탁과 다른 한 명의 신음이 낭자한다.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한 이가 페트병을 배게 삼아 몸을 뉘인다. 어느 하나 쓰러지고, 거품을 물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 늘 그러했기에 늘 그러하게 방치되는 풍경들, 표정들. 하루에도 수만 명이 기차를 타고 내리는 이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한 노인이 피를 흘리며 서울역으로 향하지만 아무도 그를 돕지 않는다. 노인은 쓰러져 다 죽어가더니 갑자기 사라진다. 한편 가출한 소녀 혜선은 원조교제를 종용하는 남자친구 기웅에게 화가 나 서울역 근처를 전전한다. 기웅은 자신을 혜선의 아빠라고 소개한 석규에게 붙들려 그와 함께 혜선을 찾아 나선다.


서울역 인근에는 사람을 물어뜯는 괴물들이 나타난다. 흔히 우리가 좀비라고 부르는 이들로 괴물들에 공격당한 사람들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공격한다. 혜선은 혜선대로 살아남기 위해 괴물들을 피하고, 기웅과 석규은 괴물을 피해 혜선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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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좀비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괴물들이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좀비물로 분류하기에는 애매하다. 괴물에게 공격당한 인간들의 서바이벌 스토리가 아니라 서울역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과 행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거리로 내몰린 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마음속에 도사린 이기심과 특권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어딘지 모르는 불편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무책임하고 몰지각한 톱다운(top-down)식 사고와 행정체계에 적개심을 일으킨다. 사과 한 알을 반으로 툭 자르고는 자 봐, 썩었잖아.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지 않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서울역의 이러한 직설화법은 관객에게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평면적인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를 기반으로 여과 없이 드러난 감독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또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임에도 강렬한 사실감을 느낄 수 있는 대화 구성과 배경 덕분에 상영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흥행요소로 보인다.


흉측한 괴물들이 날뛰며 산 사람을 살육하는 도시. 연상호 감독은 어쩌면 자신이 서울역을 오가며 바라봤던 풍경 속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괴물이란 존재를 놔둬 본 것일지도 모른다. 출구가 많아도, 심지어 열여섯개라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도시를 그려보고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속삭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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