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_#2016년 1월
또 한 해가 지났다. 언젠가 지나간 달력을 들춰 본 적이 있다. 언젠가의 시간은 황급히, 또 언젠가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던 것만 같다. 지나간 시간 혹은 세월이라는 것은 지금, 그러니까 지나간 시간 혹은 세월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시점에선 대개 아련하기만 하다. 그 아련한 세월이 만든 나라는 존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존재할 수 있을까. 앞으로 존재하는 시간 동안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으로, 또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지난 2013년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로 아카데미 등 평단에서 이탈리아의 차세대 거장으로 지목받은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이 2년 만에 'YOUTH'로 돌아왔다. 소렌티노 감독은 전작 그레이트 뷰티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과 통찰을 본인 특유의 은유법으로 풀어낸 바 있다. 이번엔 인간의 수명에 의거해 젊음이란 단어에 천착한다. 대략적인 수명에 기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젊음이란 무엇일까.
감독은 알프스 산맥의 풍광이 유려한 스위스 동부의 특급 스파호텔을 배경으로 삼았다. 한눈에도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는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이곳엔 수백 명은 족히 될 부유한 노인들과 몇몇 특급 스타들(이를테면 마라도나 같은)이 묵고 있다. 카메라는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지휘자 '프레드 밸린저(마이클 케인 粉)'와 그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하비 케이틀(믹 보일 粉)'을 비춘다.
밸린저와 케이틀은 서로 소변이 몇 방울 나왔냐며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지만, 호텔에서 시간을 쓰는 방식은 정반대다. 케이틀은 젊은 배우, 그리고 제작자들과 함께 차기작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다. 밸린저는 영국 여왕의 명을 받고 자신을 찾은 특사의 초청 공연 요청에도 은퇴를 이유로 지휘를 거부하곤 소일을 한다.
밸린저가 여왕의 초청을 거부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호텔에 머무는 젊은 배우 '지미 트리(폴 다노 粉)'와의 대화에서 무대가 그립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을 너무 많이 했다"는 짤막한 대답만 남긴다. 하지만 노쇠한 자신의 육체에 고단함을 느끼면서도 아무도 없는 초원에 앉아 자연의 소리에 반응하는가 하면, 호텔에서 간간이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에 걸음을 멈춘다.
지미 트리는 노년의 밸린저와 케이틀에 이어 이 영화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인물이다. 그는 호텔에 머무르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숙고하며, 차기작의 캐릭터를 연구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는 태도와 앞으로 자신이 연기할 배역의 틈바구니 속에서 갈등하는 지미 트리는 생애주기적 의미의 젊음을 뛰어넘는 젊음의 의미를 부각한다.
'YOUTH'는 감독의 전작 그레이트 뷰티와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선율과 시각적 상징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다만 감독의 의도가 물씬 풍기는 작위적인 상징법은 전작 그레이트 뷰티와 비교해 과도한 느낌이어서 미장센의 완성도는 도리어 후퇴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장센 하나하나가 작품으로 여겨질 만큼 개성이 돋보이는 소렌티노의 작법은 녹슨 눈과 귀를 자극하고, 비로소 '감각한다'는 느낌을 일깨우는 촉매제로서 손색이 없다. 감각의 인식이 곧 살아있다는 의식을 일깨운다면 소렌티노는 각본이 아닌 본인의 작법을 통해서도 'YOUTH'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는 당신에게 젊음을 묻는다. 언제이기보다 무엇이었을 그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