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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Jun 21. 2020

친구의 생일날, 케이크는 없어도

열세번째 이야기, 2020년 6월 21일 일요일. 날씨 개기일식.

이십대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모여 생일파티란 걸 했었다. 서로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다함께 모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자리였던 것 같다. 서른이 넘어가고 하나 둘씩 결혼을 하면서 생일파티도 친구의 몫에서 가족의 몫으로 넘어갔다. 이태원 밤거리를 쏘다니며 1차는 삼겹살, 2차는 라운지, 3차는 클럽을 갈까 볼링장을 갈까 티격태격 휘청휘청했던 날들은 갔다. 십여년 전 생일파티를 하면 누군가 케이크를 사와 불을 붙이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생일을 맞은 이를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 한껏 웃음짓는 모습들이 우리들의 가장 젊고 붉은 날들일줄은 그때는 몰랐다.


친구의 생일날, 케이크는 없어도

아. 우리는 우리 자신이 태어난 날을 말그대로 생일(生日)이라고 한단다. 너가 태어난 12월 18일은 아직 오지 않아서 네가 태어나고 아직 너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party)를 한 적은 없지. 아마 12월 18일이 되면 모든 가족들이 모여 네가 태어나고 일년 동안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난 걸 축하하게 될거야. 사람들을 그런 날을 통상 생일 파티라고 부른단다.


아빠가 어릴 적에는 생일 날 어떤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보다는 생일 파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아빠의 엄마, 그러니까 봄이의 할머니는 일을 나가셔서 집에 안계셨기에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 친구들을 있는대로 불러모아 피자나 치킨, 짜장면을 잔뜩 시켜 먹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생일 파티에 가본 적만 있지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인기 있는 친구,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생일 파티를 한다고 했을 때 초대 받지 못할까봐 마음을 졸였던 어떤 날도 기억이 난다.


이번주 목요일은 아빠의 친한 친구 생일이었어. 아빠와 아빠 친구는 서른이 훌쩍 넘은 아저씨들이라 제 생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긴 하지만, 그래도 생일인데, 라고 말하며 저녁에 만났어. 화려한 번화가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파티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 그냥 평소가던 종로 5가 허름한 횟집에 앉아 평소보다 비싼 안주를 시켜놓고 소주를 마셨어. 예쁘게 포장한 생일 선물도 없었어. 사실은 케이크 마저도 없었지.


그래도 좋았어. 생일날을 핑계삼아 우리는 또 마시는구나, 말하면서도 사실은 생일날 함께 있단 사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것 같아. 꼭 태어난 날을 기념하고 축하한다기보다 그저 일년에 하루, 수십년간 이어져온 축하받는 그 하루를 함께 할 수 있단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아, 네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 친구와 생일날 마주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아빠도 그랬다더라, 하하호호 하는 그런 친구의 생일날 말야. 케이크가 없어도 괜찮은 친구와 함께. ♣


이번주 봄이는

아랫니 두개가 삐뚤빼뚤 제법 많이 올라왔다. 이빨이 나고 잇몸을 간지러워하는 것 같은 표정을 자주 짓는다. 아기 의자에 앉는 것도 큰 문제가 없어 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한다. 겨드랑이에 두 손을 끼워 지면에 발을 대게 하면 우뚝 선 채 10초 정도를 버티다 후루룩 힘을 뺀다. 기는 건 관심이 없는지 여전히 매트 위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빙빙 돌며 논다.


이번주 아내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온 이후 몰라보게 외모가 예뻐졌다. 일년에 한 번 가는 미용실을 비싼 곳에 간다고 타박했던 것이 미안했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여우가 얼어붙은 연못가에서 오래전에 언 라쿤 사체를 먹고 있었다. 뼈와 지방, 가죽만 남은 볼품없는 무더기였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나는 몇 주 동안 이른 아침에 그 길을 걸을 때마다 검은 접시 모양의 언 라쿤 사체에 주둥이를 박고 뜯어먹는 여우를 보았다.

- 메리 올리버, 긴 호흡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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