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토 Jun 28. 2020

마음 깊이 축하하며 얻는 기쁨

열네번째 이야기, 2020년 6월 28일 일요일. 날씨 장마.

요즘 가까운 이들로부터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거나 좋은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는 이런저런 좋은 소식들도 많았지만 유달리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명치 끝부터 따뜻하게 올라오는 감탄으로 나도 몰래 흥분해서는 두 손을 붙잡고 정말 잘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말했던 것 같다. 제 일도 아닌 일에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 본 게 언제였을까. 들려오는 이런 저런 소식에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일이 많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인지 싶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였다.


마음 깊이 축하하며 얻는 기쁨

아. 엄마가 너를 가진 것 같다고 아빠에게 처음 말한 건 작년 4월이었어. 그땐 모든게 조심스러웠지. 어찌할 바 모르다가 아이를 기르는 친구 몇몇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었어. 이렇다는데 괜찮을까, 저렇다는데 괜찮은거지? 아빠는 아마도 괜찮을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었나봐. 하루 이틀, 늦어도 일주일만 기다리면 알게 될 사실을 친구를 채근해서 물었던 걸 보면. 손톱보다 작은 아기집에 쌀 한톨도 되지 않는 네가 자라 손과 발이 보일 때쯤, 그제서야 엄마와 아빠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아이를 가졌다고.


아빠는 이번주에 가까운 사람들 두 명으로부터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작년 아빠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너를 가졌다고 말했던 것 처럼, 이들도 아빠에게 조금은 숙쓰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가졌다고 말했지. 뱃속에 있다지만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운, 어리둥절하고 어리숙한 예비 엄마아빠의 시간. 아빠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연신 참 잘 되었다, 말했고 속으로도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되더라구. 아마도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될 빛나는 순간들이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해.

집에 오는 길은 참 기분이 좋았어. 마음 깊이 축하한다는 것, 스스로 기뻐 상대방을 진심으로 축하한 그 날이 내게도 너무 좋아서, 참 간만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지. 주변의 좋은 소식 혹은 나쁜 소식을 아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득실까지 따져보던 것이 익숙하던 나날들이 번뜩 떠올라 부끄럽기도 했어. 진심이란 거, 스스로 차올라 은근해져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아빠는 아마도 간만에 느낀 아빠의 진심에 스스로 감동했던 것 같아. 그게 참 반가웠던 것 같아. ♣


이번주 봄이는

정말 빠르다. 빙빙 돌기만 하더니 순식간에 기어가기 시작했고, 윗니 두개가 일주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빨이 나기 시작하면서 많이 칭얼거렸는데 그만큼 깨어 있을 때는 많이 웃어주고 잘 논다. 셀카를 찍자고 하고 휴대폰을 들면 제 얼굴이 신기한지 잘 쳐다본다.


이번주 아내는

장마가 져 삼사일이 비가 오고 흐리니 밖에 나가지 못했고, 산책 조차 하지 못하니 급격히 육아에 힘들어한다. 동네 조리원 동기들과 잘 맞는지 함께 공동구매도 하고 집에 모여 놀기도 한다. 이유식을 먹이면서 잘 먹으면 엄청나게 좋아하고, 잘 먹지 않으면 울 정도로 이유식에 감정이 오르내린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그게 바로 그때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 단순한 진실이었다. 자기 글을 감싸기 시작할 때, 작가가 되기 시작할 때, 스스로 벽에 이름을 걸어놓을 때, 이미 끝난 것이다. 샘물도 글쓰기와 같은 식으로 흘러나온다. 환상적인 장식을 두르고,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고, 멋진 나무를 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물이 솟아나지는 않는다. 땅속의 어둠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없다면 말이다.

-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다시 쓸 수 있을까 中



이전 13화 친구의 생일날, 케이크는 없어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