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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Jul 11. 2020

어떤 화요일, 어떤 금요일 오후

열여섯번째 이야기, 2020년 7월 11일 토요일. 날씨 맑음.

한 주마다 일기를 쓰다보니 그 날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다. 한 주를 보내고 토요일 또는 일요일의 적당한 때에 그 주를 잠시 돌아보는 일은 대개 괜한 우울감을 빚어내곤 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대부분의 나날들이 비슷하고 또 대수롭지 않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일 듯 하다. 다만 그 우울감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비슷비슷하고 특별할 것 없는 하루, 하루를, 요일 별로 꼽아 다시 떠올리면 제 나름의 기억남는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잠이 드는 그 한 문장 정도의 하루도 책을 읽듯 한줄, 한줄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몰래 빙긋이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분명 까먹어 버렸을 그 하루, 그 순간들을 잠시 마주하는 일은 꽤 재미가 솔솔한 취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어떤 화요일, 어떤 금요일 오후

아, 세상은 하루하루에 이름을 붙여 일곱 날이 지나면 돌아오는 날을 월요일이라고 부른단다. 그렇게 월요일이 지나면 다음날은 화요일, 화요일이 지나면 다음날이 수요일인 식이지. 그렇게 월화수목금토일, 월화수목금토일. 사실 매일 매일 다른 날인데 이렇게 이름을 붙이니 뭔가 자꾸 반복되는 느낌이 들기도 해.


오늘 아침 아빠는 아파트 앞 경비실 옆에 앉아 담배를 피웠어. 이번주는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곰곰이 하루하루를 떠올려보니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월화수목금요일 중 첫번째론 화요일, 그날 아빠는 퇴근길에 급작스레 친구를 불러내 삼겹살을 먹었어.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로 들어가기 직전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날이 너무 좋은 건지 마음이 싱숭생숭 했던 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 아무 일도 없이 별거 아닌 이야기로 두어시간 삼겹살을 먹고 집에 들어갈 때 쯤엔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하였는데, 뭐라 그럴까, 괜히 그 친구에게 고마워져서 마음 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나.


금요일은 정말 오랜만에 기차를 탔어.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이지만, 이곳과 달리 너른 평야와 강이 펼쳐지는 곳이었어. 아빠는 아빠의 예전 직장 동료를 보러 간 것이었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타난 아저씨가 활짝 웃는 모습이 한 편으론 반갑고 한 편으론 뭉클하여 오히려 눈을 쳐다보지 못하겠더라. 아빠가 그 아저씨를 알게된 건 10년 전인데 아빠에게 엄마를, 엄마에게 아빠를 소개해주었지. 아빠는 그 사람을 아빠의 은인이라 생각해왔는데 네가 태어나고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용산역에 내렸을 때가 다섯시 쯤이었던가. 날은 아직 덥고 해가 강했는데 택시는 잡히지 않아 한동안 길가에 멍하니 서있게 되었어. 주위를 살펴보니 어릴 적 게임기를 사러 돌아다닌 용산전자상가 로터리였고, 이곳은 참 많이 변했다곤 하나 별로 변한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 사실 금요일은 평일의 마지막, 한 주 간의 근무를 마무리하는 날인지라 후련하고 기분 좋기 마련인데 이 날은 오래 전 기억, 오래 전 알게된 이를 만난 탓인지 괜히 마음이 아련해지는 것 같았어. 아무 생각없이 사진을 한장 찍었는데, 이리저리 자르고 돌려보니 희안한 사진이 되어버렸어. 아빠는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 아마도 이 때 밖에 찍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사진이라 그런 것 같아. ♣


이번주 봄이는

재택근무를 하던 때와 달리 아침저녁 잠시 얼굴을 마주하는 정도 밖에 하지 못하다 보니, 괜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살피다 껙껙, 끄끄 소리라도 내주면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를 맞을 때 정도만 나오는 특유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에고에고, 하면서도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이번주 아내는

눈썹칼로 봄이의 머리를 처음으로 다듬어주셨는데, 스스로도 제법 마음에 드는가 보다. 우리 아들 잘생겼다, 우리 아들 잘생겼다 소리를 반복한다. 말도 못하는 봄이를 붙들고 동물 소리를 내면서 놀아주는데, 그 동물 소리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나도 몰래 실소가 터지기도 한다. 동물 연기에 능하다는 걸 이제 알았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목적은 모르겠습니다. 설사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소설을 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전에 김금희 작가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신 적이 있어요. "이런 얘기는 이상하지만 편편마다 분노감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하지만 싫어하는 마음으로는 소설을 계속 전개할 수가 없다. 그 단순하고 단일한 감정으로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해석할 수 없으니까". 저는 이 말에 굉장히 동의했고, 이후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처음의 감정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때 저는 조금 안심이 됩니다. 처음의 감정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목도한 어떤 상황에 대한 저의 마음에서 멀어질 수록, 제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기 떄문입니다. <가원>을 출발시킨 어떤 구체적인 상황은, 가족을 향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발생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런 말은 못 하는 사람이야."

- 강화길, 조연정과의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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