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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Jul 05. 2020

아이의 200일, 아빠의 100일

열다섯번째 이야기, 2020년 7월 5일 일요일. 날씨 맑음.

아이가 100일을 맞았을 때, 100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면서도 스스로 이래도 괜찮은걸까, 불쑥 겁이 났다. 아이가 기억할 수 없는 시간들을 함께 보내면서 기억할 수 있는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나, 싶었다. 고작 100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 머리 속에 아이에 대한 기억은 몇몇 순간순간들로 조각나 있을 뿐 이었다. 그리고 경험대로라면 그 조각난 순간들도 매일매일 뒤죽박죽이 된 머리 속에 어디론가 숨어들어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잡동사니처럼 되어 버릴 터였다. 100일 전, 아이가 100일을 맞았을 때 처음 적은 일기가 한주 씩 쌓여 열다섯번의 기록으로 남았다. 아이는 200일을 맞았다.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 100일이 지난 이후 200일 사이의 몇몇 순간들과 아빠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00일 전 무력하고 조급했던 나의 마음도 조금은 용기를 얻었는지 앞으로도 힘을 내자,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아빠가 손주를 위해 만들어준 아기침대

아이의 200일, 아빠의 100일

아. 참 부지런한 봄아. 한 해 끝무렵 잿빛 하늘, 눈이 올 것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는 어느 날 태어나 봄을 맞고, 여름 초입에 다다라 어느새 이백일을 맞았구나. 아빠가 이 글을 쓰는 지금 너는 아침잠을 깊게 자고 일어나 엄마와 이유식을 먹고 있단다. 많이 더운 건지 땀을 한바가지 침대에 쏟고 잤길래 걱정이 되었는데, 잠에 깨 방긋방긋 웃으며 버둥대니 그게 또 얼마나 고마운지. 


네가 방금 전에 자고 일어난 침대는 아빠의 아빠, 너의 할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주셨단다. 지난해 가을쯤 할아버지는 네가 태어날 때를 기다리며 본가 마당에 작업대를 펼쳐 목재를 고르고, 수치를 재면서 땀을 흘리셨지. 그 일은 몇 주, 몇 달간 이어졌는데 아빠도 당시엔 할아버지가 침대를 만드시는 일에 별 관심을 두지 못하였었어. 네가 태어나고 병원에 있을 때 할아버지가 집으로 침대를 하나하나 조립하셨는데 그 만듦새가 너무나 견고하고 따뜻해 너에 대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가슴 깊이 느껴졌단다.


네가 언제까지 이 침대에서 잘 수 있을 진 아직 모르겠어. 어쩌면 너의 동생이 생길수도 있고, 아빠의 동생들이 아이를 가지면 침대를 물려줄 수도 있을거야. 어쩌면 너는 이 침대에서 잠을 잤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언젠가 우연찮게라도 지금 아빠가 쓴 일기를 보고 네가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의 첫 침대, 할아버지의 첫 선물을 말야. 


아, 하루가 백일이 되고 오늘로 이백일이 되었던 것처럼 앞으로 우리의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갈거야. 우리는 지금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자. 되도록 잊지 않고 오늘의 일을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 일을 말야. ♣


이번주 봄이는

배밀이를 하는 속도가 빨라져 자유자재로 기어다녀 부엌으로 통하는 통로에 가드를 설치했다. 쇼파에 손을 뻗는 걸 보면 또 눈깜짝할 새 사물에 몸을 기대 서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번주 아내는

이유식을 잘먹어서인지 기분이 좋다가도 육아와 집안일을 동시에 하다보니 부쩍 피곤해한다. 특히 봄이가 한두시간 간격으로 잠시 깨 보채면 선잠에 들었다가 다시 잠드는게 반복돼 그게 가장 피곤해 보인다. 나또한 그 부분이 가장 피곤했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벌써 5년쯤 지났을까. 엄마와 함께 식사를 했다. 장소는 신주쿠였다. "고기가 작네"라든가 "비싸잖아"라고 실컷 투덜거리면서도, 어머니는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스키야키를 날름 먹어 치웠다. 헤어질 때 "그럼, 또 봐"라며 즐거운 듯 손을 흔들며 오후의 신주쿠 역으로 걸어들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라는 근거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등이 남쪽 출구의 개찰구에서 인파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동안 길에 서서 지켜봤다. 안타깝게도 그 예감은 현실이 됐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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