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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Jun 13. 2020

칼로 물을 벨 수 없다지만

열두번째 이야기, 2020년 6월 13일 토요일. 날씨 더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있다. 당장 죽일듯이 싸워도 금방 괜찮아지기 마련이란 뜻이라는데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부싸움 또한 치열하게 싸운만큼 애달픈 마음으로 상대방을 보듬고, 상대방은 모르나 저 스스로는 분명히 알고 있는 다툼의 원인을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까,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일까, 정도의 생각이 드는 일들일텐데 이럴 땐 특효약이 있다. 져주기다. 악다구니를 쓰며 내 주장을 설득하는데 집중하기 보다 어처구니 없다고 느껴지는 말도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인정해보는 것이다. 져주다보면 알게되는 것이 있다. 상대방이 어떤 기분, 어떤 상태,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이 맞든 틀리든, 일리가 있든 없든 그건 중요치 않다. 애당초 내 말이 맞고, 틀렸는지도 사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칼로 물을 벨 수 없다지만

아. 네가 볼 땐 어떨런지 모르겠다. 아빠가 생각하기엔 아빠와 엄마는 사이가 꽤 좋은 편이야. 아빠만의 생각일 순 있겠지만, 적어도 서로가 서로를 말없이 증오하거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 억지로 함께 살고 있진 않은 것 같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품이 다를 순 있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도리어 참 좋은 사람이다, 내게 참 과분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해.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나이만 들었을 뿐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몰라서 때때론 엄마는 아빠를, 아빠는 엄마를 힐난하고 미워하며 도저히 함께 살 수 없겠다고 까지 말하기도 했단다. 부끄러운 부분이야. 심지어 네 앞에선 절대 싸우지 말자고 했던 약속도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지키지 못한 적이 있단다. 네가 아무 것도 모를 거라 단정하고 아빠의 감정만 앞세운 것이었을 텐데 그 부분은 아빠가 늦게나마 사과할께.


아마도 말야, 엄마와 아빠는 이따금 다투게 될꺼야. 서로의 생각과 입장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의 기분이 다르기 때문일거고,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은 묵은 문제들이 켜켜히 쌓여 엄마 아빠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커져버려서는 툭 터져버릴 수도 있을거야. 그런 날엔 많은 눈물이 흐를거고, 어쩌면 함께 한 오랜 세월을 후회하는 마음이 드리울수 있겠지.


사실 이건 엄마와 아빠, 부부의 세계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오랜 시간 깊은 관계를 맺을수록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면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일인 것 같아. 그러니까 당연한 일이라는 거지. 엄마와 아빠는 이런 당연한 일들을 마주하며 하나씩 배워가고 있단다. 내가 맞단 생각보단 내가 틀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내 목소리를 높이기 보단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이 될 때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들을 말야. ♣


이번주 봄이는

하루가 다르게 활발해져 간다. 앞으로 전진하며 기진 못했도 제자리서 빙글빙글 도는 속도가 빠르고, 악력도 세져 뭔갈 쥐며 쉬이 뺒지 못한다. 조막만한 손으로 꼬집으면 아파서 도망가야 하고, 버둥거리는 뒤꿈치에 맞을까봐 조심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새벽에 갑자기 서럽게 울다가 다시 잠드는 일도 반복적이다. 머리카락을 한번도 자르지 않았는데, 이젠 한 번 밀어줘야 하나 싶다.


이번주 아내는

'모여봐요 동물숲'에 꽤 재미를 붙이시어 마을을 꾸리시고 귀엽고 예쁜 것들을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던 아내가 닌텐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꽤 낯설지만 잘 되었다 생각한다. 닌텐도 화이팅.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글자만 보고도 굴튀김 생각이 간절해지는 문장을 쓰고 싶어요. 현실의 굴튀김보다 더 독자의 입맛을 돋우고 싶습니다. 제게는 문장이 전부입니다. 문장이 바뀌면, 새로워지면, 혹은 진화하면 설령 똑같은 내용을 몇번씩 되풀이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작가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文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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