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탄 기차, 손때 묻은 배낭.

그저 오늘을 단정하게 걷겠다는 다짐.

by Dahl Lee달리

누구나 살면서 여러 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독특한 선택을 해 온 것 같다.

나는 성숙한 아이였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말에 일찌감치 깊이 공감했다.

아이일때부터 나는 타자의 욕망을 대신 욕망하지 않도록, 늘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 내가 중시하는 가치는 언제나 분명했고, 생의 고비마다 나는 그 가치에 충실했다.


이성을 고를 때, 무조건 착한 사람을 찾았다. 나는 내내 평화롭고 싶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 문과와 이과를 아우를 수 있는 분야를 원했다. 내 정체성이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대학교를 선택할 때, 집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학교를 원했다. 사랑하는 부모님은 나를 가두는 좁은 새장이기도 했다.

나만의 집을 선택할 때, 폐쇄적인 정원이 있는 집을 원했다.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고 내성적이어서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나만의 자연에 둘러싸여서 하루 종일을 보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의 결정은 언제나 성급한 감이 있었다. 한번 선택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결정에 나를 맞추는 편이었다.

모든 걸 가질 수 없다고, 우선순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충족시키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자랐다는 것.

나는 더디지만 꾸준히 자라,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여전히 자연을 좋아하지만 이제 내 몸은 더 이상 약하지 않다.

나는 이제 부모님 말을 어길 때가 많다. 부모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

나는 이제 이과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이제 착한 사람보다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좋다.


나는 요새 자주, 과거의 내가 한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과거의 내가 욕망하지 않던 것을 욕망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 어쩌면 기차를 잘못 탄 것이 아닐까.


그러나 다시 고쳐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탄 기차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어차피 행선지를 모른 채 아무 기차나 집어 탄 것이나 마찬가가 아닐까 하고.

미래의 나와 그를 둘러싼 외부환경에 대한 예측은 불가한 거니까.

그리고 어차피 삶에 정해진 행선지 따위는 없다고. 삶은 그저 정처 없는 방랑에 더 가깝다고.


어린 시절 나의 선택은 내가 메고 가야 하는 손때 묻은 배낭 같은 것.

무거워서 내려놓고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선택을 후회할 날이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미래의 나는 지금과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텐데.


삶은 어차피 불완전한 것, 불만족스러운 것.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

내일은 어차피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뿐.


중요한 것은 오늘을 걷는 태도.


나는 성실하고 단정하게, 어제의 내가 펼쳐놓은 오늘을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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