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자락에서
#친구
모든 사람들과 친구처럼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회사에서는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리드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하나 둘 만들어 나갔다. 그럴 때마다 꼭 반대 의견을 가지고 부딪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잡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럴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고민해 보았다. 결론은 서로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고민이 많을 때는 책을 읽으면서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 당시에 읽었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은 나의 생각이 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다. 사람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에 모두가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가 경험했던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일의 과제라는 공통된 목표 때문에 실행을 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렇게 공통된 목적을 만들지 못하면 회사 내에서의 실행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점이 있다. 유대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 말은 내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 회사 내에서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하나 둘 얼굴을 떠올리며 나를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지, 내게 응원을 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리고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누구인지 떠올렸더니 그 수는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했다. 그 이후 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친구처럼 잘 지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난 후, 지금도 종종 만나며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역시나 그 두 사람 중에 포함되던 사람들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비슷하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나기는 하지만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는 아닌 것 같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란 누구일까? 스스로 생각한 정의 중에 하나는 ‘조건’이다. 오랜만에 만나도 며칠 만에 만난 것처럼 편안한 그럼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목적과 조건이 없어도 서로를 위한 말 한마디로 위로해 주고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모든 사람과 친구처럼 가까워지려 노력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말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는 한다. 그러다 보면 친구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 둘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내가 집중하고 소중하게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그런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무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무에게는 소년 친구가 있었는데 그 나무는 소년을 몹시 아꼈고 매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소년은 나무의 기둥을 타고 올라 매달리고, 그네를 타고, 숨바꼭질을 즐기며 나무가 주는 열매를 먹기도 했다. 놀다가 지치면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소년이 나이가 들면서 나무는 홀로 있을 때가 많아졌다. 오랜만에 찾아온 소년은 나무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나무는 소년에게 돈이 필요하면 열매를 주고, 집이 필요하면 자신의 가지를, 배가 필요하면 자신의 기둥을 베어서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또 오랜 세월이 흘러 나무는 할아버지가 된 소년을 위해 더는 줄 것이 없었고 마지막 남은 자신의 밑동으로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누구나 어릴 적에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나무에게 소년은 어떤 존재일까? 사랑. 사랑이란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줄 만큼의 마음이다. 측정할 수 없는 사랑의 크기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나무는 전혀 작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의 크기는 행복과 비례할까? 동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나무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득,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사랑의 크기는 얼마만큼의 크기일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주었던 사랑을 그녀는 얼마만큼 받았다고 느꼈을까. 난 그녀에게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동화 속의 나무와는 다르겠지만 내 마음을 다하려고 했었다.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나뭇가지로 놀이터가 되어주고, 강한 햇볕이 내리쬐거나 소나기가 내릴 때 지붕이 되어 막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이 힘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든든한 버팀목처럼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는 동화 속의 나무처럼 줄 것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건 같은 자리에서 기대 쉴 수 있는 기둥뿐. 다시 잎을 풍성하게 만들어 그늘이 되어주고 열매를 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녀는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났다. 그녀에게 겨울은 너무 춥고 힘들었던 것 같다.
나무가 건강하기 자라기 위해서는 땅에서 영양분과 수분을 얻어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그녀에게 가끔 그런 말을 했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된다고 했었다.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 서로가 바라는 사랑의 크기는 다르다.
다시 따뜻한 계절은 돌아오고 나는 건강한 나무가 되려 한다.
#술은 기억을 부른다
얼마 전,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들어가는 회사마다 왜 그리 일 복은 넘쳐흐르는지 이번에는 넘쳐흐르는 것이 아니라 홍수 수준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 내 몸은 조금 아니 많이 고생을 하겠지만 이곳에서 내가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고,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위로를 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반 이상을 회사에 쏟아붓는 요즘.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술이 한 잔 생각났다.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지만 술이 생각나는 그런 밤. 누군가와 함께 술을 한잔하기도 불안한 그런 시기라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안줏거리를 하나 포장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 문을 열고 들어와 짐을 정리하고 씻은 후, 사 온 음식과 냉장고에서 며칠을 자리 잡고 있던 소주 한 병을 꺼낸다. 예전에는 생각치 못했던 혼술을 언젠가부터 하기 시작했다. 시작이 어렵지 한 번 시작하니 이것도 별거 아니더라. 그렇게 소주 한 병과 안주를 준비해 TV와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는다. 우선 잔에 소주를 담아 내 목을 넘기고 안주 하나를 맛본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된다. 그래도 혼자 마실 때는 딱 한 병만 마신다. 그 이상은 싫다.
한때 많이 듣던 노래가 있다. 한번 꽂히면 한동안은 그 노래를 많이 듣는 경향이 있는데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술은 모든 기억들을 불러오고 그 기억들은 너를 불러온다는. 그런 가사를 들을 때면 나 역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잠시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한때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물론 그 마음은 과거에만 머물기에 이제는 소용이 없지만. 내 모든 걸 주고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앞에 나타난 장애물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번 뛰어넘고 두 번 뛰어넘었지만 결국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말았다.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때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난 그렇게 나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내가 더…’ 이런 가정법의 말들이 수없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었다. 예전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 것 같다고. 실제로 난 그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도 마냥 그렇지는 않더라. 가끔은 마음이 아파 비를 맞고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했었다. 아마 난 그런 척을 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강한 듯해도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남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 많이 아파했을 뿐. 술을 마셔도 지난 인연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이미 찍어버린 마침표가 쉼표로 변할거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모두 잊히지는 않겠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묻힌 것들은 희미해지고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저 멀리 사라져 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각자 홀로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 된다면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치지 않고 잘 지내는지 가벼운 미소와 함께 안부를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연히 그런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두려움
제주도로 향하는 바닷길. 커다란 배는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짙은 어두운색의 바다는 크게 휘몰아치며 철썩하고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이상하게도 난 그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어 영상으로 담는다. 배는 생각보다 빠른 속력으로 나아가고 있어 슬로 모션으로 그 모습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담았다. 순식간에 부서져 가는 파도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천천히 돌려본다. 자연의 모습이란 이렇게 경이롭구나 하며 감탄했다.
제주도로 향하는 바닷길은 짧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면 이미 도착했겠지만 왕복을 두 번은 할 저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배 안이 답답하여 오랜 시간 바닷바람을 쐬며 밖에 머물렀다.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아래를 보니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이 바닷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있었다. 그러다 2년 전 친구와 함께 제주도에서 스쿠버 체험을 할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두 번째 스쿠버 체험이었다. 첫 경험은 호주 케언즈에서였는데 부둣가의 바다색은 맑지 않았지만 3시간 정도 배를 타고 나가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에메랄드빛의 바다. 그 바닷속에서 나보다 큰 대왕조개와 인증샷을 찍고 여러 산호초 사이에서 만화에서 보던 물고기들과 스노클링을 했던 꿈같은 시간이었다. 이런 추억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제주도의 바다체험은 아쉬웠다. 기대보다 바닷속은 맑지 않았고 나쁘지도 않았던 그런 기억. 기대가 워낙 컸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스쿠버 체험을 마치고 배 위에 올라와 꽤 긴 휴식시간을 가졌다. 시간 여유가 있어 수영이라도 하려고 혼자 맨몸으로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헤엄치다가 문득 잘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상어라도 나타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속에서 두려움은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난 숨이 가빠짐을 느끼고 결국 배로 돌아오고 말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바다에 상어라는 포식자가 돌아다니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내 마음속을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준 것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바다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나는 처음 바다에 들어갈 때 보다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두려움은 왜 생겼을까? 아마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감.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잘 될지. 내일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내년에 나는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같은 경험을 해도 누군가는 그 상황을 즐기고, 누군가는 그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다. 화엄경에 모든 것은 오로지 내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는 단어 중에 하나는 ‘어차피’이다.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더 많이 채워보려 한다.
#생각을 조심히
평소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예전에 한번 보고 싶었던 드라마가 있었는데 최근 그 주인공이 나온 예능 프로그램을 본 후 며칠만에 정주행을 한 드라마가 있다. ‘비밀의 숲’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내부 비밀 추적극으로 흥미롭게 시청을 했다. 매 회마다 누가 범인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마지막에는 반전을 보여주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드라마였다.
비밀의 숲에서 범인이 사람을 살해한 이유는 ‘복수’였다. 자신의 아이가 죽게 되는 사고로 가정은 파탄이 났고 법은 그 사건에 대해 정당한 심판을 내리지 않았다. 이에 범인은 철저히 준비해서 법을 대신해 그들을 심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를 죽게 만들었고 범인은 사고의 원인을 만든 사람을 살해하게 된 안타까운 결과이다. 법이라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재밌게 봤던 영화 중 하나는 마블의 ‘어벤져스’이다. 시리즈를 거의 다 챙겨본 몇 안되는 영화이다. 여러 화려한 히어로들을 뛰어넘는 악당 타노스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겨 세상에 있는 절반의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타노스는 왜 그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히어로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타노스가 살던 행성. 타이탄은 지나친 기술의 발전으로 멸망의 위기에 몰렸을 때, 자원 고갈과 인구 폭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급진주의자였던 타노스는 멸망을 막기 위해 조건을 따지지 않고 인구의 절반을 죽여 해결하자는 생각을 하고 우주를 지키기 위한 자기만의 사명감으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행동으로 판단한다. 설득력있는 어떠한 동기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가 옮긴 행동이 법과 도덕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선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만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나라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평가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선이 존재하며 그 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소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제도로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 기준안에서 우리는 행동하게 된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시작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다르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결국 그 사람을 만든다. 생각을 조심히 해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제주도 한 달 살기
새벽 6시. 아직은 해가 뜨지 않은 시간. 거대한 배 안으로 크고 작은 차들이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한다. 근무자들의 안내를 따라 주차를 하면 바퀴를 튼튼한 끈으로 고정시킨다. 그러면 준비는 끝난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각자의 객실로 이동하여 대기한다.
곧 배는 닻을 끌어올리고 완도 항구에서 멀어진다. 시작되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제주도 한 달 살기의 출발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할 수 있을까? 다니던 회사를 떠나고 잠시 쉼표를 찍고 싶었다. 이때가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 퇴사를 하기 전부터 배편과 숙소를 모두 준비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지 않기에 캐리어 하나로 해결할 수 없고 렌트비를 생각하면 차를 가지고 가는 게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숙소는 어디로 할 지 고민을 하다가 제주도 하면 그래도 ‘바다’지라는 생각으로 에메랄드빛 바다 앞에 위치한 곳으로 예약을 했다.
‘2020년 1월 29일부터 2월 27일까지 29박 30일, 정확히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었는지 돌아본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이런 시간이 과연 주어질 수 있었을까? 아마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7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마침표를 찍고 제주도로 떠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직을 할 때는 보통 재직 중에 다음 회사를 찾아놓고 쉼 없이 바로 넘어가는 게 현명하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한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태가 되면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자신의 눈높이에 맡지 않는 회사를 어쩔 수 없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이때가 아니면 제주도에서 한 달간 살아보는 일이 언제 생길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재직 중에 몇 번의 면접을 통해 ‘내 경력으로 다른 회사를 못 찾을 정도는 아니겠구나’라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기에 휴식을 택하고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졌다. 그리고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한 달은 금세 시간이 흘러갔다. 평소에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보며 바쁘게 생활했지만 퇴사 후에는 알람을 끄고 살며 늦잠도 자고, 하고 싶었던 이것저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한 달간은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제주도에서 보낸 한 달은 꿈만 같았던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으면 푸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있었다. 제주도에서 협재와 금능의 바다는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다. 그런 바다를 매일 감상했다. 숙소 앞에는 흔들의자가 있었는데 그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에 잠기거나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릴 때가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전 직장 동료가 제주도에 와서 만났었는데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과장님, 인상이 아주 편하게 변하신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으며 보냈던 직장 생활에서 탈출한 나는 그렇게 변해있었다. 사람의 마음과 성격은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만큼 마음에 평온을 찾을 수 있던 시기였다.
평소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11시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몇 시간은 흘러있었다. 그리고 17시쯤 돌아와 집 주위를 산책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은 한라산을 다녀오려고 했었다. 예전에는 그리 시간을 머물지 않다 보니 한라산 정상에 있는 백록담만 보고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보지 않았던 윗세오름, 사라오름, 어승생악도 가볼 수 있었다. 각각의 매력이 있었지만 정상에서 보는 제주도의 여러 오름들과 저 멀리 펼쳐있는 수평선의 풍경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또 여러 생각들을 보다 깊게 해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것들을 해볼지, 나 스스로에 대해서, 여러 관계들에 대해서 등 평소보다 더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기에 이 시간을 통해 어느 정도의 방향은 잡았다고 생각한다. 읽었던 책에서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 자신을 알기 위해 혼자 여행을 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보면 내가 무엇을 잘하며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떻게 극복하는 등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제주도에서의 시간이 나에게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관광을 하려 렌즈 안에 풍경을 담는 것이 우선이 아닌 나를 더 알기 위해 펜을 더 많이 들었었다.
제주도에서의 한 달,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어줄 시간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