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뱅이의 이야기
자, 오늘의 글은 노래 하나와 함께 시작하겠다.
젝스키스 - 사나이 가는 길 (부제 : 폼생폼사) [1997]
다들 음악을 크게 틀었다고 치고, 글을 시작하겠다.
폼에 살고 죽고. 그래. 내 이야기다. 나는 허세에 찌든 인간이다. 허세에 찌들어 무언가 ‘멋져보이는 어른의 행동’이라면 무조건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특히나 음식에 관한거라면 먹어봐야, 그리고 마셔봐야 직성이 풀린다. 내 생각에 이것은 다 머릿속에 환상을 심어준 서양 고전 소설들의 음식 묘사들 때문이다. 그 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것은 디저트를 제친 술 묘사였다.
술. 어른들의 전유물. 무언가 향기롭고 그윽한 맛이 나는 미지의 음료. 한 모금 흘려넣으면 기절한 사람도 번쩍 눈을 뜨는 독한 브랜디. 뱃사람과 해적들이 벌컥벌컥 마시는 럼주. 로빈슨 크루소가 조난당한 무인도에서 담배와 함께 마시는 럼주. 러시아 문학의 쓸쓸함만큼이나 시리고 투명한 보드카. 무언가 달콤하고 황홀하며 귀족들이 홀짝이곤하는 포도주. 이름부터 멋진 칵테일. 진, 테킬라, 샴페인….
내가 아는 술이라고는 제사 후 음복으로 입만 대보는 막걸리의 달짝한 맛과 보건실 손소독제 냄새가 나는 소주 뿐이었다. 그러기에 문학 속 아름답게 묘사되는 술이 무척이나 근사하게 보였다. 초록 병에 담긴 소주를 콸콸 들이붓는 것보다는 반짝이는 와인 글라스에 담긴 핏빛 포도주가 더 근사해보이지 않는가.
아무튼 성인이 되면 꼭 칵테일바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어린이는 무럭무럭 자라 성인이 되었다. 역시 칵테일바라면 혼자 가서 바 자리에 앉아 ‘늘 마시던 거로.’ 라고 주문하는 게 어른이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건 너무나 ‘어른의 행동’이었기에 친구들과 함께 캐주얼한 칵테일바에 우르르 갔던 기억이 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술이 좋은 한편 술이 안 맞는 인간으로 판별났다. 스스로를 속여보려 했지만 나는 알코올향을 못 견디는 게 맞았다. 아, 술 좋아한다. 주류박람회에 가서 수십만원을 쓴 게 글쓴이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알코올향이 강하게 느껴지면 맛있다, 라는 감상보다는 윽, 술! 이라는 감상이 먼저 떠오른다. 젠장. 멋진 어른의 조건 1. 독한 술을 잘 마신다가 기각되었군.
물론 이것저것 마셔본 결과 와인이면 가볍고 산뜻하며 단맛과 신맛이 나는 와인이 좋은 것을 판명났다. 칵테일도 비슷하고…. 아. 한편으로는 아예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선호한다. 중국의 백주라든지. 보드카도 나쁘지 않고. 이렇게 말하면 술이 안 맞는다고 말한 게 거짓말이 되려나?
어쨌거나 나는 술을 사다 모은다. 와인과 하이볼용 리큐르와 위스키는 항상 찬장에 위치해있다. 가끔 홀짝이며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인생의 낙이다. 안주는 필요없냐고? 나는 개인적으로 안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먹어도 과일 약간 정도를 먹는다. 그리고 제일 가는 안주는 분위기라고 하지 않던가. (방금 지어낸 말이니 찾아보지 마십시오.)
지금 밖은 비가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음, 바쿠스의 물이 마시고 싶군. 바쿠스의 물이 무엇이냐고? 그야 당연히 와인 아니겠는가. 오오, 황홀경과 광기, 포도주의 신이시여. 그대의 보랏빛 물방울을 글 쓰는 작가에게 선사하소서. 한 모금에 영감을, 한 모금에 얼큰한 행복감을, 그리고 마지막 한 모금에는 까무룩한 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