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우유의 추억

부제: 뭐든지 강제로 먹이면 맛없어진다.

by 김재득

대한민국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다면 급식 우유의 추억 한두 가지 정도는 있을 것이다. 1970년 학교 우유 급식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급식 우유도 50살은 먹은 셈이다. 우유 당번이 들고 오는 차가운 흰 우유. 송글송글 물이 맺힌 우유 팩을 따고 우유를 마시는 초등학생의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급식 우유의 추억을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서 그리 좋은 기억은 없다. 나는 흰 우유를 싫어한다. 그리고 항상 부모님은 급식 우유를 신청하셨다. 이런 젠장. 고역이었다. 왜 흰 우유를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유 특유의 비린내를 싫어한다. 남들은 우유 냄새와 맛이 고소하다는데 내 입에는 느끼하고 느글거린다. 흰 우유 광팬분들에게는 미안하게 된 이야기다.


우유를 마시기 싫은 어린이는 그럼 과연 어떻게 우유를 처리했을까? 그냥 안 먹었습니다. 예. 안 마셨습니다. 차가운 우유 팩에 맺힌 물방울이 표면을 타고 흘러 책상을 적시는 내내 나는 죄 없는 우유와 눈싸움을 했다. 차라리 차가운 상태로 마신다면 나을 것을 미루고 미룬 상태로 마시면 훅 끼치는 우유의 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져 후회하면서도 우유 마시기를 미루었다. 학교에서 반드시 우유를 마시고 돌아가라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가방에 우유를 넣고 하교하고는 했다.


슬슬 이제 다음에 무엇이 이어질지 예측되지 않는가? 가방에 들었다는 것을 깜빡해서 묵힌 우유를 꺼내는 것 정도는 양반이다. 그렇다. 교과서와 학용품에 짓눌린 연약한 우유 팩이 터지는 끔찍한 불상사이다. 이는 매년 연례행사로 이어졌으며 우유 냄새가 진동하는 책과 가방을 탄생시켰다. 엄마는 우유로 엉망이 된 가방과 학용품을 수습하시면서 제발 우유를 마시라고 하셨지…. 하지만 내가 엄마 말을 잘 듣는 어린이였다면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거다.


나 외에도 흰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위한 신성한 그 이름, 제티가 있었다. 한 포만 있다면 향기부터 아찔한 초코 우유의 감동을 선사하는 마법의 가루, 제티. 제티를 가진 자는 학급 위에 군림하는 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꽝꽝 얼린 오렌지주스나 아이스티를 가져온 자, 군것질거리를 가져온 자가 있다.) 제티 유무로 신분제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 신분제 피라미드 저 아래의 노비가 아니었을까 한다. 가끔 초코나 딸기 맛 알갱이가 들어있어서 빨아 마시면 딸기 우유나 초코 우유가 되는 제품을 가지고 오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것은 사파였다. (그리고 애초에 맛이 연해서 흰 우유를 그대로 마시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정파는 오로지 제티. 그것만이 진정한 급식 우유의 왕도였다.


세 문단이나 소모하여 흰 우유가 싫다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한 나이지만, 흰 우유를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오레오를 먹을 때는 흰 우유가 꼭 필요하다. 단팥빵을 먹을 때도 흰 우유가 필요하다. 뭐라고 할까나, 그런 음식들을 나는 신성한 중화제라고 부른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과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를 내는 위대한 음식. 다디단 밀가루 식품이 목을 턱 막을 때 차가운 흰 우유를 마시면 목구멍에 고속도로가 뚫린 듯 싹 내려간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아무튼 급식 우유에서 시작해서 단팥빵으로 끝난 이야기이다. 우유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우유가 마시고 싶어졌다. 아. 흰 우유는 아니다. 제티를 한 봉지 붓고 잔뜩 흔들어 거품이 인 초코 우유를 마시고 싶다. 이왕이면 1리터 우유 팩에 제티를 왕창 붓고 흔들어서 꿀꺽꿀꺽 마시고 싶다. 하지만 못한다. 우유와 제티를 살 재력도 있고, 그렇게 마신다고 해서 잔소리할 사람도 없는데, 내 혈당 건강을 위해 못한다…. 아아, 이게 바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구나.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5화허세에 살고 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