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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Apr 25. 2022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곳

개방된 공간 속에서 여전히 폐쇄적인 마음의 대립

우리 집은 마을의 정중앙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아홉 집 정도가 있는 작은 이 부락은 2차선 국도변을 끼고 있고 동쪽 서쪽 남쪽으로 야트만 한 언덕 같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우리 집은 남쪽 언덕에 있다. 옛날에는 산이었지만 마을 길을 만들어내면서 언덕을 넘는 마을길이 생겼고 그 마을길 옆 터에 이 집을 지었다.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 놀랐던 부분이 있다. 울타리와 대문이 있는 집이 아무 데도 없었다. 바깥 세계와 안쪽 세계를 가르는 건 얇은 현관문 하나뿐이었다(그마저도 열어두고 산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담장과 대문이 있는 곳들도 많은데 말이다. 집을 지을 때 울타리와 대문을 세워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도시에서 대문이 있는 곳에 살았던 건 아니지만, 아파트 건물의 1층 출입문이 어떻게 보면 심리적인 대문 아니겠는가. 한 건물에 살아도 전혀 교류가 없는 폐쇄적인 곳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는데, 울타리와 대문이 없이 활짝 개방된 집이라니. 어쩐지 발가벗은 채로 들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을 전체에 없는 울타리와 대문을 도시에서 온 집이 떡하니 세운다면, 마을 분들에게는 아마 이렇게 들릴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과 교류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우리에게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는데도 말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다. 지형 구조상 울타리를 두루기 힘든 면도 있었고 마을 분위기를 존중하기로 했다. 아무도 우리에게 대문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미 모든 집들에 없으니 이곳의 암묵적인 룰을 마땅히 유추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 집 마당에서는 온 마을이 내려다 보이게 되었다. 마당이 뭐야. 집 안에서도 창을 통해 다 볼 수 있다.


용식이 아저씨는 반장님 어머님이 일을 나가지 않는 날 아침, 꼭 어머님네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강구 어르신네 어머님은 반장님네 집 뒤편 논 두둑을 건너 준혁 어머님네에 자주 놀러 가신다. 준혁 어머님은 다리가 불편한 와중에도 밭 사면에 난 풀을 부지런히 뽑아내신다. 반장님 어머님은 일이 없는 날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며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신다. 조 씨 어르신은 밭에 난 풀을 몇 날 며칠이고 쪼그려 앉아 뿌리까지 말끔하게 뽑아내신다. 농번기에 강구 어르신은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안 길을 따라 밭으로 자주 가신다. 노인 회장님은 경운기를 타고 우리 집 옆 마을길을 넘어 뒤쪽 밭으로 자주 가신다. 오후 네다섯 시 즈음에는 우리 동네 유일한 네 살 아기 종민이가 엄마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현관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집 안에서 다 알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겨울에는 나무들이 죄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 마을의 움직임이 훤히 더 잘 보인다.


집에서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조 씨 어르신 집에서도, 반장님 집에서도, 준혁 어머님 집에서도 우리 집은 훤히 내다 보인다. 내가 오전 아홉 시와 오후 다섯 시쯤 텃밭에 들렀다 오는 것도,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둘째 고양이 몽이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도,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것도 모두 다 보일 테다. 제일 불편한 점은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 식사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 밭을 철마다 갈아주시는 반장님네 식구를 불러 마당 테이블에서 고기라도 구워 먹고 싶지만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보는 터라 좌불안석이다. 이 집을 부르면 저 집도 불러야 한다. 고기 한번 구우려다 동네잔치가 될 판이다.


무엇보다 제일 불편한 점은 내 집 마당에 서 있어도 누군가의 눈을 자꾸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평생을 내 안에 심어놓은 남의눈을 의식하며 지냈다. 그거 좀 안 해보겠다고 이곳에 왔는데 여기서는 남의 눈이 물리적인 실체로서 존재한다! 오 마이 갓! 그렇다고 마당에서 딱히 흉 잡힐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거창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텃밭 일 좀 하고 몽이의 데크 산책을 시키고. 적고 보니 정말 하는 일이 없다. 설령 남이 본다고 한들 딱히 신경 쓸 일도 아니다. 내가 동네 어르신들의 행적을 본의 아니게 보면서 별생각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누군가 너를 잠시라도 볼 수 있다’는 생각 만으로 자꾸 움츠러들게 된달까. 올 겨울 내내 농한기와 재택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현관문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진짜 원인은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는 내 마음 때문이었다.


내 생각과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곳에서 새삼스레 매번 깨닫는다. 문제의 형태만 조금씩 달라질 뿐. 마당이 훤히 트인 이곳에서 내가 만들어낸 창살은 결국 내가 치워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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