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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Jul 19. 2021

(제발) 잘 자라 우리 아가

아기들이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자는 것을 '통잠'이라 한다.

100일 무렵이 되면 통잠을 자기 시작하는 아기들도 있고(일명 100일의 기적)

또 기질에 따라 영원히(?) 잠자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기들도 있다.

아직 우리 아기의 기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아기는 그리 호락호락한 편이 아니다.


아기를 기르면서 잠의 영역이 이렇게 중대한 문제인 줄은 몰랐다.

나는 정말 육아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아기들은 하루에 대부분을 잠만 잔다길래

'아기가 잠만 자면 나는 꽤 심심하겠는걸?'이라는 무지한 생각마저 했었다.


아기가 처음 집에 왔을 때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신생아 시기가 지나가면서 슬슬 아기의 잠투정이 시작되었다.


안아서 달래고, 입으로 쉬쉬- 소리를 내기도 하고,

등을 토닥토닥 달래기도 하며 겨우겨우 재우고 나면

3분 만에 다시 "빼액!!" 울어대기 일쑤였다.

또 어떤 때에는 자는 것 같아 조심스레 침대에 눕히려 하면

침대에 몸이 닿기가 무섭게 자지러지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이다.

밤이면 한두 시간마다 울며 배고프다고 하여

젖을 물리면 제대로 먹지도 않고 꾸벅꾸벅 졸아대는 것이었다.


아기를 재우는 문제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마치 시험 범위가 아닌 곳에서 어려운 문제가 나온 것과 같았다.

범위를 잘못 알아 망쳐버린 시험은

술 한 잔 하며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을 기약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육아는 포기할 수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면'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여

책을 여러 권 샀고, 밥 먹는 시간에 틈틈이 읽어보았다.

그리고 맘 카페 '신생아 돌보기 질문방'에 잠과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었다.


며칠 간의 벼락치기로 알아보니 아기의 수면의 문제는

만국 공통의 중대한 문제였고, 육아의 질을 결정짓는 열쇠였다.

아기가 잠을 자지 않아서 부모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수면교육'은 여러 육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계속되는 이슈였다.

책과 검색을 통해 아기의 잠에 대한 이론을 정립한 뒤

우리 부부도 아기의 수면문제를 해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도 나름 '교육'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어른은 둘이고, 아기는 하나인데 해볼 만하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잠자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매일 수면 의식으로 '수유하기-이야기들려주기-뽀뽀해주기'를 해주는 등

책에서 읽은 여러 방법을 적용해보았다.


아주 조금씩, 정말 아주 조금씩 아기의 잠 문제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우리 아기의 마음을 읽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문제의 해답인 아기를 바로 앞에 두고

잠을 글로 배우려 했다.


아기는 왜 자는 것을 싫어할까?

아기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신기한 냄새도 계속 맡고 싶고, 신나는 소리도 더 듣고 싶은 것이다.

잠에 들면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 구경을 더 이상은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잠을 잘 시간만 되면 그렇게 울어대는 것 같았다.

실제로 아기가 놀 때 갑자기 졸리면

눈을 비비면서도 어떻게든 더 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졌다.

잠에서 깰 때가 되면 다시 빨리 놀고 싶은 마음에 칭얼 칭얼

"나를 빨리 이곳에서 꺼내 주세요!"라며 소리치나 보다.


아기의 잠을 방해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더니

모로 반사 때문에 팔다리가 휙 올라가 버리거나

자기가 뀐 방귀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라 깨는 경우도 많았다.

또 어떨 때에는 뒤늦게 속이 더부룩하여 온 몸을 비틀기도 하고

코가 막혀서, 너무 더워서, 너무 습해서 등등

세상은 아기를 귀찮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 투성이었다.


우리 아기는 지금도 여전히 잘 시간만 되면

잠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때마다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여준다.

"자고 일어나면 더 신나게 놀 수 있어~"

또 일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밝은 표정으로 아기를 반겨준다.

"혼자 침대에서 잘 자고 일어나다니! 우리 아기 정말 대단해, 최고야!!"

남편은 아기에게 '잘 때마다 네가 그렇게 울어대면 침대가 슬퍼한다'는 식의 유치한 이야기까지 만들어 들려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울어대면

'아기도 사람인데 언젠가는 자겠지 뭐...'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려 한다.


누워서 잠만 자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너도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에필로그>

나는 소원이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통잠'이다.

아기의 통잠이 아닌, 나의 통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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