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준비하면서 휴직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꽤 고민되는 일이다.
나에게는 출산휴가 90일, 그리고 3년의 육아휴직 기회가 있다.
학교라는 직장의 특성상 3월에 모든 일이 시작되는데 내 아기의 출산 예정일은 5월
너무나 괜찮았던 내 컨디션을 고려할 때 나는 출근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 달을 더 근무할 경우 학교는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학생들은 한 달만에 담당 교사가 바뀌게 되고,
4월에 대체교사를 구하는 게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학교의 상황만 고려하자니 한 두 달의 월급과 휴가 기회가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만을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기에는
나는 학교에 너무 익숙해진 사람이었고,
좋은 일을 앞두고 모든 일을 깔끔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결국 올해 3월부터 3년 간 휴직을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평가계획, 성취 수준 등 학기 초에 제출해야 하는
각종 서류를 꾸며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무척 기뻤다.
매년 별다를 것 없는 양식에 작년에 쓴 내용을
적당히 리모델링하여 '복붙'하는 일로 시작하던 3월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2월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로 머리를 바꾸고,
산뜻해 보이는 옷 몇 벌을 준비하고,
학급 규칙, 1인 1 역할, 학급 특색활동 등을 계획하고
학생들 이름을 예쁜 색지에 인쇄하여
책상과 사물함에 붙여주며 새 학기를 준비하는 하는 시기였다.
이런 일들에서 멀어지고 보니
내가 내 일을 꽤나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들이 새 학년을 어떻게 꾸밀지 궁금하기도 하고
올해는 이런 신박한 수행평가를 계획 중이라고
눈을 빛내며 이야기하는 남편을 보며 약간 부럽기도 했다.
이상하게 자꾸만 나도 끼고 싶었다.
학생들을 만나면 지금까지 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꼭 하라고 할 때 열심히 안 하고 뒷북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혼자 놀아보겠어!'라는 생각으로
아기가 태어나기 전 2달을 어떻게 놀지 알차게 계획을 세웠다.
하고 싶은 일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평일에 카페 가기, 평일에 백화점 가기, 평일에 산책하기...
일을 할 때에는 그렇게 부러워 보이던 것들이 막상 기회가 주어지자
며칠 만에 시들해지는 것 같았다.
혼자 하니 별로 흥이 나지 않았고,
이 시국에 어디를 가도 마음 편히 놀 수는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처음의 소외감은 이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내가 과연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3년 뒤 학생들 앞에 설 수 있을까
매년 지겹게 해오던 식상한 서류들조차 만들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건
3년 뒤가 오기는 할까...
아기가 태어나면
이런 다양한 감정을 들여다보는 여유 따위는 모두 사치이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3년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게 허락된 기회이다.
3년이 지나고 나서 어리석게 '다시 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뒷북치지 않도록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작은 친구와 사이좋게 잘 지내봐야겠다.
<남편의 참견>
나랑도 사이좋게 잘 지내보자! 지금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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