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로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전혀 우아하지 않았다.
매일 마스크를 낀 채로 수업을 하다 보면 숨이 차고 귀가 막히고 어지러워지는 게 일상이었다.
급식지도를 맡은 날이면 급식실로 성난 황소처럼 나를 돌진하는 수백 명의 청소년들로부터 이리저리 몸을 피해야만 했다.
발열체크, 시험감독 등 학교에는 서서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운 좋게도 나의 직장은 임신과 관련한 제도와 복지가 잘 마련된 편이었다.
우선 매일 2시간씩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모성보호시간'제도가 있다.
하지만, 시간표를 오전이나 오후에 2시간 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수업이 없는 날이라 할지라도 매번 '모성보호시간'을 쓰는 것은
동료들과 관리자(교장, 교감)님들의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또한, 병원 검진을 위한 휴가를 임신 기간 중 총 10번 쓸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며칠 전부터 여러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그날의 수업을 미리 바꾸어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당당하게 권리를 찾고 주어진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결재를 올려놓고서는 완결될 때까지 노심초사하거나
완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할 일이 갑자기 생겨 퇴근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임신과 관련된 제도와 복지가 잘 마련되어있고 이를 이용하는데 상대적으로 허용적인 직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임산부는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참석하여 건배제의를 하는 사람처럼 불편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사기업은 얼마나 더 할까?
임산부가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함을 물론이고,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기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하루에 2시간씩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다.'는 식이 아니라
'임산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2시간씩 단축 근무를 해야만 하고,
이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은 관련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하는 정도의
뉘앙스의 제도라 할지라도 실상 임산부들은 죄를 짓는 기분으로 결재를 올릴 것이다.
게다가 아직은 소극적인 제도 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직장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안다.
이는 국가가 나서서 모든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제도보다도 더욱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공동체의 합의이다.
학교는 매우 민주적이고 공정한 곳에 가깝지만
'전체 일÷전체 사람 수' 식의 사고가 최선이라 여겨지는 한계가 있는 집단이다.
만삭에 가까운 몸으로 시험감독을 하며 버거워하던 나를 본 동료 교사가 나를 대신해서 학교에 건의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임산부라고 시험 감독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였다.
이런 문제를 임산부가 먼저 나서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임산부들은 혹여나 자신이 단체나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임산부를 배려하는 것을 형평성이나 공평함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임산부들에게는 평생 남을 상처가 될 것이다.
임신 기간이 즐거워야 좋은 에너지가 아기에게 전달되고,
행복한 아기가 태어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서는 문제다. 우리가 만든 이 생명이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법과 제도의 문제는 그것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로써 사람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임산부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사회에 여러 이유로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배려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겠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남편의 참견>
자네라면 할수있다네. 아이가 자라듯 우리도 잘 해보자구!